질문을 멈추지 않는 사람들 - 스탠퍼드 ETPP를 마치며 The Ones Who Keep Questioning - Reflections on FALL 2026 Ethics+Tech Public Policy Practitioner Course

2026년 9월부터 11월까지, 스탠퍼드대학교 McCoy Family Center for Ethics in Society에서 운영하는 ‘실무자를 위한 윤리·기술·공공정책’ 과정(ETPP)을 수료했다. 이 과정은 전 세계에서 기술, 윤리, 공공정책 분야의 일을 하는 실무자 100여 명이 함께 읽고 토론하는 코호트 기반 온라인 코스로, 신청을 받을 때부터 짧은 에세이를 쓰도록 했다. 실무자로서 어떤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지, 왜 이 프로그램을 수강하려고 하고 무엇을 이루고 싶은지, 코호트 기반의 학습 환경이 무엇이 특별하다고 생각하는지 등에 대한 생각을 써서 제출했다.

돌아보면 이 과정은 이 에세이를 쓰던 때부터 시작된 것 같다. 나는 무슨 마음으로 지금의 일을 하고 있는지, 무엇이 부족하다고 느끼는지, 다른 사람들과 만나 무엇을 배우고 싶은지 찬찬히 적었다. 에세이를 제출하고 몇 주 뒤, ETPP 팀으로부터 코스에 합격했다는 메일을 받았다. 메일에는 심사 과정에서 모든 에세이를 AI를 사용하지 않고 직접 읽었다는 이야기가 덧붙어 있었다. 기술 윤리를 다루는 과정에 들어온 것이 맞구나! 그 한마디에 조금 더 설레는 마음이 들었다.

ETPP 세션별 예습·리플렉션·복습을 정리한 로컬 학습 빌더 화면

사실 영어로 긴 텍스트를 읽고, 강의를 수강하고, 토론하는 것이 대학 이후로 너무 오랜만이라, 그 점이 가장 긴장되는 부분이었다. 그래서 수업 전에 사전 읽기와 에세이 문항을 옵시디언에 정리하기도 하고, 로컬에서 띄울 빌더를 만들어서 과정을 따라갔다. 그렇게 두 달이 지나고 나에게는 무엇이 가장 크게 남았을까?

가장 큰 선물은 질문들이었다.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질문을 떠올리고, 다른 사람들과 나누는 것의 힘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된 것이랄까. 코스 과정 내내 많은 아티클과 논문, 책을 읽고 세심하게 설계된 에세이 문항에 답을 내야 했다. 어떻게든 에세이를 써서 하루 전에 부랴부랴 제출하고 난 뒤 수업에 들어가면, 그 수업 내내 내가 쓴 에세이가 초라하게 느껴졌다. 내 생각이 종잇장처럼 얇구나 하는 생각으로 돌아갔다. 파이어사이드챗에서 여러 분야에서 힘쓰는 연사들의 생생한 이야기를 듣고, 동기들이 던지는 날카로운 질문에서 또 새로운 배움을 얻었다. 그렇게 한 시간 반이 지나고 나면, 남은 시간은 매주 같은 얼굴을 마주했던 코호트 그룹의 멤버들을 만났다. 코호트 리더의 진행에 따라서 여러 대화가 이루어졌다. 때로는 서로 질문을 던지기도 하고, 각자의 나라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나누기도 했다. 멕시코에서의 일, 인도에서의 일, 그리고 한국에서의 일, 미국 실리콘밸리와 행정부, 시빅 테크 환경에서의 일 등 여러 일터에서 일하는 멋진 멤버분들의 이야기를 듣고 나면 또 다시 내 안에 공고히 있던 것들이 부서지고 다시 세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일곱 번의 세션이 진행되는 동안, 알고리즘 판단의 공정성, 데이터 수집과 프라이버시 문제, AI와 플랫폼 기업에 대한 규제, 온라인 아동 성착취물, AI가 노동에 미치는 영향 등 여러 주제에 대해 읽고 토론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았던 몇 개의 세션을 기록해보려고 한다.

네 번째 세션에서는 스탠퍼드대학교 사이버정책센터의 법학 방문교수 플로랑스 그셀(Florence G’Sell)의 강의와 함께 AI를 어떻게 규율할지 살폈다. 사전 자료로 읽은 그셀의 보고서 「불확실성 아래의 규제」 1장과 존스홉킨스대학교에서 AI 윤리와 정치철학을 연구하는 세스 라자르(Seth Lazar) 교수의 「예견적 AI 윤리」는 아직 충분히 알지 못하는 기술의 영향에 어떻게 대비할 것인지 생각하게 했다. 미래를 안다고 과신하지 않으면서도, 피해가 생길 때까지 손 놓고 기다리지 않으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

두 분의 대화를 들으며 계속 내 안에 맴돈 질문은 AI 에이전트의 책임에 관한 것이었다. 그동안은 도구를 잘못 사용한 사람에게 책임을 물어왔는데, 그 도구가 사람의 지시를 해석하고 스스로 여러 단계를 수행한다면 책임은 어떻게 나뉠까. 요즘 유행하는 나를 대신해 전화를 걸고 예약하는 AI를 떠올려 보았다. 나에게는 편리한 서비스라도 전화를 받는 사람에게는 원하지 않는 부담이 될 수 있다. 만약 문제가 생긴다면 사용한 사람, 만든 기업, 서비스를 운영하는 조직은 각각 어디까지 책임져야 할까. 이런 질문을 먼저 하다 보면 기술을 만드는 속도가 느려지지 않을까.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생길 부담을 나중으로 미루면서 얻는 속도를 그대로 좋은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내가 기술의 유용함을 설명할 때, 그 기술을 쓰지 않는 사람에게 미칠 영향까지 함께 보고 있는지 생각해야 했다.

6회차 세션 'AI and the Future of Work' 강의 슬라이드

여섯 번째 세션에서는 스탠퍼드대학교 컴퓨터과학 교수 메흐란 사하미(Mehran Sahami)의 강의에서 AI와 노동의 미래를 다뤘다. MIT 경제학 교수 대런 아세모글루와 MIT 슬론경영대학원 기업가정신 교수 사이먼 존슨의 「AI가 일의 미래에 미칠 영향을 선택하기」는 AI가 사람을 대체하는 방향과 사람의 능력을 보완하는 방향을 나누어 보여주었다. 기술의 방향은 이미 정해진 것이 아니며, 그 선택에 노동자의 목소리가 필요하다는 논지가 내 생각과 완전히 일치했다. 스탠퍼드대학교 디지털경제연구소를 이끄는 에릭 브린욜프슨 교수 연구팀의 「탄광 속 카나리아? AI가 최근 고용에 미친 영향에 관한 여섯 가지 사실」도 함께 읽었다. AI에 많이 노출된 직종의 청년 고용 변화를 분석한 연구를 보면서, 생산성이라는 큰 숫자 아래 누구의 일할 기회가 달라지고 있는지, 특히 이제 막 사회에 진입하는 나잇대의 사람들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다시금 떠올리게 됐다.

이러한 질문은 곧 일터의 시간으로 이어졌다. AI 덕분에 일을 빨리 끝낼 수 있게 되었을 때, 아낀 시간은 누구의 몫이 될까. 일을 하는 사람이 쉴 수 있을까, 더 의미 있다고 여기는 일에 쓸 수 있을까, 아니면 더 많은 일을 맡게 될까. 이렇게 서로 다른 주제를 따라가다 보면 비슷한 질문으로 돌아왔다. 이 모든 변화는 누가 결정하는가. 누구의 편의와 누구의 부담을 함께 살피고 있는가. 그 결정에 영향을 받는 사람은 자기 의견을 말할 수 있는가. 기술의 성능만 살펴서는 답할 수 없는 질문들이었다.

이 과정 내내 나는 질문을 던지고, 받고, 다시 내 안에 새로운 질문으로 가득 채우는 시간을 경험한 것 같다. 그리고 그것이 철학이었다. 내가 철학을 좋아했던 이유, 마음껏 질문을 던지고, 익숙한 판단을 의심하고, 답이 없는 세상을 해석하려고 했던 그 학문의 재미를 다시금 불러일으킬 수 있었다.

특히 스탠퍼드대학교 과학기술 사회윤리 분야 석좌교수이자 정치학자·철학자인 롭 라이히(Rob Reich) 교수님이 맡은 첫 시간과 마지막 시간이 그 재미를 가장 크게 불러일으켰다. 그는 맥코이 사회윤리센터의 윤리·사회·기술 이니셔티브를 이끌고 있으며, 인간중심AI연구소(HAI) 부소장도 맡고 있다. 두 번의 세션에서 SF 단편인 어슐러 르 귄의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과 N. K. 제미신의 「남아서 싸우는 사람들」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교수님은 끊임없이 질문을 이어갔다. 누군가 답을 내놓으면 그 판단의 근거를 묻고, 다른 입장에서 생각해 보게 하고, 소설 속 상황에 놓인 사람이 나라면 실제로 어떻게 할 것인지까지 밀고 들어왔다. 주어진 선택지 중 하나를 고르다가도, 왜 꼭 이 둘 중에서 골라야 하는지 질문 자체를 되물을 수 있었다. 듣는 나도 한쪽에 고개를 끄덕였다가 이내 멈칫하고, 방금까지 그럴듯하다고 여겼던 내 생각을 다시 들여다보았다. ‘도덕적 카페인(moral caffeination)’이라는 표현이 딱 맞았다. 내가 미처 묻지 않았던 것을 묻게 되고, 익숙한 생각에 안주할 틈 없이 머리가 계속 깨어나는 느낌. 그 시간이 정말 짜릿했다.

마지막 수업에서는 그 질문이 내가 상상할 수 있는 세상의 범위까지 넓어졌다. 일을 할 때는 늘 지금의 조건에서 가능한 것부터 찾는다. 그런데 더 나은 세상을 상상할 때조차 미리 현실의 제약을 가져와 선을 긋고 있었던 건 아닐까. 행동에 옮길 때 고려해야 할 한계가 있다고 해서, 내가 바라는 삶을 상상하는 일까지 먼저 줄여둘 필요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판단을 의심하는 데서 시작해 아직 없는 가능성을 그려보는 데까지 나아가는 것. 오랜만에 그런 철학적 상상을 마음껏 해볼 수 있어서 좋았다.

돌아보면 이 과정의 구성 자체도 내가 앞으로 하고 싶은 일과 닮아 있었다. ETPP의 바탕에는 라이히와 컴퓨터과학자 메흐란 사하미, 정치학자 제러미 와인스타인이 함께 만든 스탠퍼드의 학부 수업이 있다. 윤리와 인문학, 사회과학과 정책, 기술의 관점을 한데 모아 기술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살피려는 시도였다. 그 배움을 기업과 시민사회, 정부에서 이미 기술에 관한 결정을 내리고 있는 실무자들에게 넓힌 것이 이 과정이었다.

내가 해보고 싶은 것도 이 구상과 비슷했다. 각자의 일터에서 고민을 가져와 함께 읽고, 자기 생각을 글로 써보고, 다른 분야의 사람에게 질문을 받으며 다시 생각하는 자리. 기술을 이해하는 일과 우리가 바라는 삶을 묻는 일을 함께 배우고, 그 배움이 각자의 다음 결정에 조금씩 영향을 줄 수 있는 자리. 앞으로 그런 자리를 만들어보고 싶다. 수업을 듣는 동안 무엇을 배웠는지만큼이나, 우리가 어떻게 함께 배웠는지를 오래 기억하게 될 것 같다.

공교롭게도 이 과정을 시작할 즈음 올해 내내 써오던 AI 비평 에세이 단행본을 막 탈고했던 시점이었는데, 이 과정을 지나면서 책의 마지막 부분을 수정해야겠다는 생각도 같이 들었다. 내 안에 질문이 갇히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건네는 말을 해야겠다는 생각, 그것이 무용해 보일지라도, 지금 당장 큰 변화를 만들지 못하더라도, 계속 이야기하는 사람들을 늘리고 내가 그런 역할을 할 수 있다면, 그것이 분명 의미를 가져올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계속 이야기하는 일이 얼마나 큰 변화를 만들 수 있을지 여전히 모르겠다. 당장 결정을 바꿀 힘이 없는 자리에서 대화만 이어가는 것이 무력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 그래도 이번 과정에서는 다른 사람이 건넨 질문 때문에 내 생각이 달라지는 경험을 거듭했다. 나 역시 누군가에게 그런 질문을 건넬 수 있기를 바란다. 일터의 동료들과, 함께 읽고 공부하는 사람들과, 기술 앞에서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며 살아갈지 이야기하고 싶다.

이제 막 내 앞에 수많은 질문들과 개념이 펼쳐졌다. 마지막 시간에 Davey가 말했던 것처럼 ETPP는 이제 막 시작되었으니까, 이 질문들을 어떻게 더 깊게 고민해보고, 이미 연구하고 공부한 이야기들을 엮어보고, 내 일터에 적용해보고,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눠볼 것인지 생각해봐야지. 함께 질문할 사람들과 더 읽고 배울 곳들을 만나게 해준 ETPP에 감사를 전한다.

Zoom 화면 속 수업에 참여한 나의 모습 네 컷

+ 매주 목요일 오전마다 업무를 늦게 시작할 수 있도록 양해해 주신 카카오임팩트에도 감사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