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인 - 20대 여자
- 알게 된 곳 : 시사인 저널 북 첫 번째 시리즈인 '가늘게 길게 애틋하게'를 인상 깊게 읽었고, 천관율 기자의 '20대 남자 현상' 영상도 인상 깊게 보았던 터라, 내가 주인공인 '20대 여자'는 텀블벅 펀딩을 안 하려야 안 할 수가 없었다. 랜선 북토크까지 포함된 상품으로 펀딩을 해두고 내내 기다렸다.
- 구한 방법 : 텀블벅에서 펀딩 해서 제일 먼저 받아보고 읽었다.
- 읽은 기간 : 2022년 2월 14일 ~ 2022년 2월 23일
페미니즘은 패배하지 않았다
제20대 대한민국 대통령 선거 전에 이 책에 대한 글을 쓰고 싶었다. 책은 배송 받자마자 그 자리에서 다 읽었고, 하고 싶은 말은 잔뜩 쌓여있었지만 결국 한 줄도 쓰지 못했다. 그리고 나 또한 팔을 자르는 심정으로 투표소에 들어갔다. 투표권이 생긴 뒤로 지방 선거 한 번, 총선 한 번, 대선 한 번 딱 한 번씩만 해본 터라 많은 경험이 있는 건 아니었지만, 투표소에 들어가기 직전까지 이렇게나 고민했던 적은 없었다. 그 고민의 과정이 사회를 위해 발전적인 방향이 아니라, 세상이 더 나빠지지 않기를 바람이라 더 괴로웠다. 왜 나는 이런 선택을 강요받아야만 하는 것인가 괴롭기까지 했다.
대통령이 누가 되든, 내 삶에 큰 변화가 없을지도 모른다. 나는 어쨌든 정규직 일자리가 있고, 내 이름으로 일을 하고 있기도 하고, 작게나마 만들어온 나의 자산도 있으니까. 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고용이 이어질지 안 이어질지 모르는 일자리를 가진 친구들은? 아직 사회에 나서지 않은 친구들은? 여성 가족부의 지원을 받는 사람들은? 그 사람이 대통령이 되어서는 절대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다른 선택을 마음 놓고 할 수는 없었다. 안희정이 있었고, 박원순이 있었다. 그때 내가 가졌던 죄책감과 괴로움이 떠올랐다. 박원순이 사망했을 때 회사에서 매일 같이 헛구역질이 나오던 때가 생생하게 떠올랐다. 뉴스룸에 앉아 한숨만 폭폭 내쉬던 김지은 씨를 멍하니 바라보던 어느 날 밤이 떠올랐다. 안희정이 대통령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박원순이 만든 시민 사회 운동을 동경했던, 과거의 내가 괴롭게만 느껴졌던 그 많은 날들이 떠올랐다. 나는 마음 놓고 1번에 투표할 수 없었다.
판교의 게임 회사 노동자이자 여성인 류호정 의원이나, 사회의 이야기가 필요한 구석구석을 명확한 언어로 짚어내던 장혜영 의원이 떠올랐다. 대선 토론 때마다 자신의 시간을 써서 작은 곳의 이야기를 대변하던 심상정 후보가 아른거렸다. 결국 나는 1번을 찍고, 정의당에 후원금을 보낸 그 '20대 여자'가 되었다.
스물둘에 알게 된 '페미니즘'은 나에게 용기를 주었다. 내가 그동안 가지고 있던 인식을 바꿀 수 있게 되었다. 나의 몸이나 얼굴을 부정하지 않게 해 주었다. '세상에 믿을 대상이 없는 사람들에게 그나마 신뢰 가능한 것이 여성에게는 페미니즘, '(179쪽)이었다. 그리고 이번 선거 결과로 페미니즘이 패배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패배한 것은 여전히 극복하지 못한 세대 간의 인식 차이, 영-호남 지역 간의 갈등일 뿐이다. 오히려 변화한 세대의 정치적 감각이 나타났다고 본다. '20대 여성은 정치에 관심이 많고 정치참여에 높은 열의를 가지고 있지만 자신들의 요구가 정치권에 관철된다고 생각하지 않'(111쪽)을 뿐이다. '부유하는 심판자'였던 그들이 잠시 힘을 모았던 것뿐이다. 언제든 흩어질 수도, 언제든 모일 수도 있는 형태로. 그것은 메갈리아 이후로, 아니 그 전의 수많은 여성 운동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이 움직임이 언제 어떻게 끝을 맺을지, 영원히 끝이 나지 않을지 알 수는 없다. 그렇지만 적어도, 사회적 불평등을 공고히 하는 사람을 원하지 않는다는 사실, 안티 페미니즘으로는 대세론을 점유할 수 없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 결과가 만족스럽진 않지만, 조금의 희망이 남은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