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어진 만큼 단단해진 서른살 생일
'한국 나이'라는 말이 없어진 것은 2023년 6월 28일이었다. 법제처는 행정 기본법과 민법을 개정하는 '만 나이 통일법'을 시행했고, 처음 만나는 사람과는 만 나이로 이야기하라고 했다. 윤석열이 당선되고, 만 나이로 기준이 바뀔 거라는 이야기가 돌던 2022년 말 즈음 나는 스물아홉 살이었다. 내년이면 서른 살이 된다고 생각했는데, '만 나이 통일법'의 시행으로 서른 살이 2년이나 유예된다고 생각하니 사실 달라지는 게 없는걸 알면서도 '시간을 벌었다. 다행이다'라고 생각했다.
2022년 6월부터 올해 여름까지, 번아웃을 여러 번 겪었고 대부분의 시간 동안 내 길을 잃었다고 생각했다. 재무 상담 전문가, 커리어 코치, 심리 상담 전문가 등 다양한 전문가를 만나서 고민을 털어놓기도 했다. 그러면 한동안은 길을 찾은 것처럼 기쁘기도 했다. 하지만 길을 찾았다고 생각할 때 다시 길을 잃었다. 차라리 계속 헤매고 있다는 걸 인정했으면 다행이었을 텐데, 나는 인정하지도 못하고 내가 길을 찾았다고, 혹은 찾을 거라고 확신했다. 나는 똑똑하니까, 자주 회고를 하고, 나의 삶을 기록하니까. 그런 내가 내 삶에서 길을 잃고 헤매는 일 같은 건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과신했던 것도 같다.
그렇게 한국 나이와 만 나이 사이에서, 스물아홉과 서른 사이에서 2년여를 머물렀다.
지난 월요일은 만 서른이 되던 날이었다. 덤으로 얻은 2년의 시간을 헛되게 흘려보내지 않은 덕일까. 나의 지난 10년 동안 차곡차곡 쌓아온 경험을 전문성으로 발휘할 수 있는 자리로 이직하게 되었다. '기술로 사회를 변화시키고 싶어요'라며 2012년의 내가 건국대학교 면접장에서 컴퓨터 공학과 교수님 앞에서 말하던 꿈, 철학과를 다전공하는 특이한 공대생으로 인터뷰를 하며 '궁극적으로 기술을 통해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일을 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라고 다짐했던 것, 어느 더운 여름날 주하와 떠들다가 원래 하고 싶었던 건 뭐였냐는 주하의 질문에 '사실 내가 진짜 진짜 진짜 원래 하고 싶었던 거는 ‘기술로 세상을 바꾸는 일’이 원래 제일 하고 싶었던 게 옛날에는 그랬었어.'라고 대답했던 것.
그 시간 속에서 나는 철학을 공부하는 공대생, 마을 공동체 활동가, 사회적 기업 인턴, 게임 회사 공채로 취업한 신입 서비스 기획자, 답답한 화면 설계에 갇히는 것이 싫어 몸부림치다가 TPM을 알게 되고 새로운 도전을 하러 떠났던 시간들. 문제에 부딪히면 그저 깨지고 굴러서 일어나는 방법 밖엔 몰라서, 그게 내 관성이라서, 판교 곳곳에서, 서울 곳곳에서 숨어서 울면서 뚜벅뚜벅 계단을 올랐던 시간들.
생일은 무조건 축하를 받는 날이니 당연히 기분이 좋지만, 만 나이로 바뀐 덕에 더 좋았던 건 이미 서른 살이 된 친구들의 환영이었다. 2022년 말, 맞이하기 두렵기만 하던 서른 살이 2년이 지난 지금 더욱 기쁘게 맞이할 수 있는 서른이 되었다는 것. 그리고 그 길 앞에 서 있는 나의 친구들, 언니들이 있다는 것. 이보다 든든하고 감사한 일이 있을까?
기쁜 마음으로 또 나의 길을 걸어야지. 또 장애물을 만나 깨지더라도, 그저 부딪히고 울면서 버티는 일은 이제 졸업했으니까 나만의 방법으로 새롭게 잘 헤쳐나가야지. 솜솜님 말대로, '인생은 이제야 시작되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