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천의 여름
올 여름은 딱히 휴가 계획을 미리 세워두지 않았다. 사실 일주일 쯤 여름 휴가 가는 건 2022년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고. 올해도 그렇게 길게 여름 휴가는 못가게 되었지만, 그래도 여름은 집 안 보다는 집 밖에 있어야 하는 summer in loving 인간이기 때문에 미리 세운 계획이 없어도 어떻게든 여름을 즐길 방법을 짜내야한다.
지난 7월 말에 제주도를 다녀왔는데, 주 목적이 소리꾼 김수인의 가야금 병창 관람 및 제주에 사는 지인들 만나기였으므로 물놀이는 생각도 못했다. 제주에서 급만난 무디타쌤과 조천에서 콩국수를 먹고 함덕 해수욕장에 갔는데, 정말 너무 아름답고 시원해보여서... 아 나도 너무 바다에 들어가고싶은데..? 생각만 했다.
서론이 기네. 암튼 그래서 바다에 가고 싶었고, 엄마가 서천에 가자고 해서 오랜만에 재택근무를 낀 금토일 서천행을 결정! 지난 주말은 3일 동안 서천에서 보냈다. 금요일은 아침에 도착해서 에어컨을 튼 집에서 내내 시원하게 재택근무를 하다가, 퇴근하고 나선 아빠랑 야구를 돌려보면서 수다를 떨다가 일찍 잠들었다.
다음날에는 춘장대 해수욕장에 갔다. 비가 왔는데, 햇볕이 뜨겁지 않아서 오히려 좋았다. 만원을 주고 튜브를 빌려서 물에 둥둥 떠있었다. 물에 둥둥 떠서 바다로 떨어지는 빗방울을 보았다. 파도 하나 없는 서해 바다는 물에 떠있기 좋은 곳이었다. 튜브를 내려놓은 뒤에는 그냥 바닷물에 누웠다. 온 몸에 힘을 빼고 물에 누워서 둥둥 떠서 하늘을 바라보기도하고, 눈을 감고 있기도 했다. 눈을 감고 엄마랑 언니가 하는 대화를 들었다. 너무 평화롭고 행복하기만 하다고 생각했다.
집으로 돌아와서 낮잠을 잤다. 물놀이하고 돌아와서 푹 자는 건 너무 행복한 일이잖아? 일어났더니 아빠가 사온 해물과 밭에서 따온 호박을 잔뜩 넣은 파전이 있었다. 파전을 먹고서는 서천역에 도착한 이모를 데리러 갔다. 가는 길에 엄마랑 본 무지개. 여름 하늘, 파아란 논밭, 무지개, 시원한 바람.
그 다음 날에는 아침부터 이모의 갯벌체험 시간이었다. 지난번 서천에 왔을 때 호준님이랑 갔던 코스를 이모와 엄마에게도 인도해주었다. 비가 온다던 소식은 물러가고 파랗고 아름다운 갯벌이 우리를 맞아주었다. 넓고 시원하고 탁 트인 갯벌. 살아있는 바다.
엄마와 이모가 갯벌에서 동죽을 캐는 동안 나는 언니 운전 연수를 시켜주었다. 얼마 전 연수를 받은 언니는 아직 운전을 무서워했다. 한시간동안 차근 차근, 비인까지 운전해서 돌아왔다. 조수석에서 보는 서천의 여름 또 얼마나 아름다운지! 맨날 서천에서 운전만 하다가 여름을 보니 너무 행복했다. 언니가 빨리 운전 잘했으면 좋겠다.
점심을 먹고선 마지막 일정으로 장포리 바닷가에 갔다. 장포리는 수심이 깊고 해수욕장으로 운영하는 곳이 아니라 수영은 못했지만, 맨 발로 백사장을 걸으며 이모와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고 소나무 숲에 호돌이와 누워 파도 소리와 함께 책을 읽었다. 아 행복하네. 어제 빗방울 떨어지는 검은 바다도, 햇빛이 부서지는 파란 바다도, 서천의 여름은 꽤나 매력이 있군. 행복하다고 마구마구 생각하며 일요일을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