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자리의 모양을 찾아서] 에필로그
'내 자리의 모양을 찾아서'라는 이름으로 첫 글을 쓴 것은 2019년 1월이었다. 신입사원 공채 교육을 받으면서 지금까지의 시간들을 정리해보자는 마음에서 시작한 일이었다. 교육이 끝나고 회사 근처 카페에 가서 노트북을 타닥타닥하던 시간이 아직도 생생하게 떠오른다. 그렇게 시작한 글을 2025년 8월에 와서 마치게 될 줄이야. 그리고 그 글을 마치고 있는 지금도 아직 판교에 있다니. 사람 일은 참 모를 일이다.
약 7년의 시간이 흐르면서, 나는 '내 자리의 모양'을 결국 찾아낸 것일까?
한 편으로는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겠다. 2021년에 레뮤제에서 같은 이름으로 강연을 했을 때, 내가 걸어온 길을 설명하면서 '내 자리의 모양'이라는 것은 어떤 기존의 틀에 끼워맞춘 모양이 아니라고 말했다. 그저 '김민석 별자리' 같은 것이라고. 앞으로 내가 어떤 길로 뻗어나가든, 그것은 누군가가 미리 정해놓은 무슨 무슨 모양이 되는 것이 아니라 그저 나만의 모양일 것이라고.
지금도 똑같이 생각한다. 나는 2025년 8월 현재 국내 IT 대기업의 기업 재단에서 일하고 있고, 사회를 변화시키고 사회를 돕는 기술을 만드는 사업을 맡고 있다. '기술 기획'이라는 이름으로 기술 전문성과 상상력을 엮어내고 있으며, 'TPM'이라는 이름으로 여러 기술 프로젝트의 탄탄한 기반과 시스템을 만들고 운영하고 있다. 이 모든 일들은 내가 오랫동안 하고 싶었던 일이고, 무엇보다 내가 제일 잘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런데 여기에 오기까지의 과정을 돌아보면, '울타리'에 대한 나의 시선이 완전히 달라졌다는 걸 깨닫는다.
2016년, 미디어업계에서 일하고 싶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넥스트 저널리즘 스쿨을 듣고 나서 함께 수료한 친구들과 작은 뉴미디어를 꾸려서 작당모의를 할 때였다. 그 무렵 CJ ENM에서 일하던 신입 PD의 사망 사건이 있었다. 그 사건은 나에게 너무 큰 충격을 주었고, 나는 어떤 울타리에 들어갈지 생각하기 보다 내가 들어갈 울타리가 어떤 모양이 되어야할지 고민하겠다고 썼다.
그 후에 들어가게 된 회사에서 나는 예상치 못하게 무엇보다 아끼는 울타리를 만났다. 하지만 오래 가지 않아 그 울타리는 나도 모르게 부서졌고, 결국 그 부서진 틈으로 저벅저벅 걸어나왔다.
이제는 내가 바라보는 시선이 조금 달라졌다. 내가 어떤 울타리 안에 들어갈 것이냐를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그 울타리에 있는 나는 어떤 사람인가, 그 안에 있는 나를 어떻게 채울 것인가를 생각한다. 그리고 그 울타리 안에는 어떤 식물을 심고, 어떤 존재들과 함께할 것인가를 고민한다.
어쩌면 이제 나는 걸어나온 그 틈을 지나 더 넓은 평야에 살 수 있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잠깐은 여기에 울타리를 쳤다가, 또 계절이 지나면 저기에 울타리를 칠 수도 있다. 그 울타리 안에 혼자 돗자리를 깔고 누워서 하늘을 바라보기도 하고, 누군가 놀러와서 옆자리에 앉기도 하고. 또 그저 존재하기도 할 테지. 그것이 내가 찾은 내 자리의 모양이다. 너른 평야에 놓인 돗자리와 그저 그 순간에 존재하는 나.
이제 나는 꿈이냐 진로냐 직업이냐, 같은 질문에 골몰하지 않는다. 어쩌면 꿈을 이뤘기 때문일지도. 그리고 이제는 다른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야 하는 때가 왔기 때문인지도. 넥스트의 넥스트가 무엇이냐고 물었던 K님의 말에 이제는 대답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언제든 덜렁 돗자리 위에 누워 하늘을 바라보며 미소지을 수 있었으면.
19살에 처음 "무언가를 만들고 싶다"고 생각했을 때, 그 무언가가 바로 이런 것이었을까? 기술이 사회를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는지, 사회의 문제를 기술로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지 고민하고 실행하는 일. 세상에 화두를 던지고 싶다던 스무 살의 꿈이, 지금은 기술과 사회 임팩트라는 이름으로 구현되고 있다.
그런데 이제 나는 이것이 완성된 무언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돗자리를 펼쳐놓고 하늘을 바라보는 것처럼, 이 자리도 언제든 접어서 다른 곳으로 옮겨갈 수 있는 그런 자리다. 중요한 것은 어떤 자리에 있든, 그 순간의 나를 온전히 받아들이고 미소지을 수 있다는 것.
내 자리의 모양은 계속 변화할 것이고, 그래도 괜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