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자리의 모양을 찾아서] #8. 울타리가 무너져도 괜찮아
이 모든 것을 다 해냈던 2021년이 지나고 나서 2022년이 되었고, 따뜻한 울타리와 기세등등한 자신감으로 가득했던 나는 드디어 와장창 깨지는 순간을 맞이하고 말았다.
인생을 살면서 가장 최악의 해가 언제였나 생각해보면 2002년과 2022년일 것이다. 언젠가부터 회사 건물 1층의 회전문이 나의 하루를 빨아들이는 지옥문같다고 생각했고, 나는 따뜻하게 데워지는 물 속에서 죽어가는 줄도 모른 채 죽어가는 실험실의 개구리같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회사에 출근한 것이 엔씨에서의 마지막 1년이었다. 회사 안에서는 일의 의미를 찾기 어려웠고 야구를 함께 보는 동호회 친구들과 회사 메신저로 수다를 떨며 시간을 죽였다. 팬텀싱어를 보다가 갑자기 소리꾼에 덕통사고를 당해서 운전을 배웠다. 전국의 산과 공원을 뛰어다니는 오리엔티어링에 빠졌다. 소리꾼과 오리엔티어링으로 나의 주말은 매번 전국 유랑이었다. 그때의 나에게 가장 중요한 말은 어느 책에서 읽었던 구절이었다.
사랑하는 일들을 삶의 우선순위에 두고 의무적인 일들은 적당히 맞춰서 끼워 넣으면 된다.
회사 일은 더이상 나에게 사랑하는 일이 아니었다. 아니, 사실 너무 열렬히 사랑한 탓에 그 후 느낀 배신감이 너무 아프고 아려서 더이상 사랑하고 싶지 않았다는 말이 더 정확할 것이다.
그 시간들을 하나 하나 떠올리거나 복기해보는 것은 그다지 유용한 시간이 되지 못할 것 같아서, 모든 일이 다 지나고 난 후 2023년 초에 회사 상담실에서 상담사 선생님이 해주셨던 말을 다시 읽어봤다.
회사에서는 일 이상에 무언가가 충족이 되었었나봐요. 가족 안에서 못 느낀 걸 느꼈던 것 같아요. 정말 이거는 운이 좋은 사람 같아요. 회사가 얼마나 좋았을까요. 되게 정말 즐겁고 진심으로 일했을 것 같아요. 왜냐하면 이거는 내가 너무 원했던 거고 내가 진짜 갖고 싶었던 거잖아요. 그러니까 월급이 주는 그 기쁨보다는 이게 나한테 정말 중요한 가치였던 것 같은데 이게 한 사람으로 인해서 흔들리고 뭔가 내가 되게 이렇게 뭔가 굳건하다고 믿었던, 나한테 너무 중요한 가치가 흔들리고, 그래서 여기서 내가 계속 못 있으면은, 내가 이렇게 좋아하던 이거를 내가 경험하지 못하게 되면 난 또 어떡하나 그런 불안감이 되게 많았던 것 같네요.
근데 그 경험도 굉장히 나한테는 의미가 있을 것 같아. 심리적으로 이렇게 따뜻하고 안정된다는 게, 소속된다는 게 이런 느낌이구나. 그거는 나한테는 되게 중요한 경험이고요. 또 이번 일을 겪으면서 가정도 그렇지만 조직도 그런 거고 사실 가정도 조직이에요. 그렇죠 다만 혈연과 뭔가 이렇게 결혼이라는 관계로 맺어진, 그리고 자식 입장에서는 선택한 적 없지만 날 때부터 소속된 그런 집단이죠. 그 조직도 흔들릴 수 있죠. 그래서 그 안에서 이렇게 흔들리면 이런 부분이 힘들 수도 있겠구나도 사실은 민석님한테 또 좋은 경험일 수도 있을 거에요.
잘하고 계신 것 같아요. 그러니까 어떻게 보면 회사에서 받은 따뜻함과 안정감은 정말 덤으로 온 거죠. 보통 우리가 기대하기 되게 힘든 건데, 나는 되게 운이 좋은 사람이어서 정말 덤으로 온 것 같고 그러다 보니까 덤으로 온 거는 거기에 어떤 구성원이 또 들어오고 나가고 조직이 바뀌느냐에 따라서 충분히 변동이 가능한 요인이잖아요. 그러니까 조금 더 회사에서 지속 가능하고 안정적으로 기대할 수 있는 것 혹은 외부의 요인보다는 내 어떤 능력이나 내 직무 안에서 얻을 수 있는 것들로 조금 더 이렇게 초점을 포커스하면은 덜 흔들리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걸 본인이 아신 것 같아요.
이후 여차저차 직무를 바꾸게 되었고, 6개월 정도는 새로운 일에 집중해서 재밌게 이런 저런 일을 해냈다. 하지만 그마저도 여의치 않았다. 사실은 이미 이 회사의 시간이 그때쯤 다 닳은 것도 같은데, 미련이나 애정같은 것으로 그 끈을 이어보려 노력한 것도 같다. 그리고 상처로 가득한 마음을 그대로 안고 회사를 떠나는 것은 내가 회사를 좋아했던 마음에 너무 큰 아쉬움이기도 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 근속 5주년을 맞았다. 근속 5주년을 맞았던 날 블로그에 이런 글을 썼다.
[관성과 이니셔티브 사이 - 5주년 근속 휴가를 맞는 마음]
얼마 전 한 스타트업 대표와 커리어 상담을 했다. 여러 이야기 중에 만 5년간 한 회사를 다닌 이력이 ‘관성적인 사람’처럼 보인다는 말이 기억에 남았다. 그 이야기를 듣고, 불과 2주 전 커리어 컨설턴트 무옥 님이 집어준 나의 강점이 ‘이니셔티브’였다는 게 떠올랐다. 관성과 이니셔티브. 정말 정반대에 있는 단어 아닌가. 그럼 나는 그 사이 어디엔가 존재하는 것일까? 아니면 관성도 이니셔티브도 나를 잘 나타낼 수 있는 말은 아닌 걸까?
‘관성’을 처음 배웠던 중학교 과학 시간이 떠오른다.
***"돌 부리에 걸려 넘어질 때, 우리가 뒤로 안 넘어지고 앞으로 넘어지지? 그게 관성이야. 우리는 앞으로 가고 있었으니까 계속 앞으로 가려는 성질이 있고, 그래서 앞으로 넘어지는 거야."***
관성은 물리학적 개념이다. 물체가 가속되거나 정지되려고 할 때 그 상태를 유지하려는 성질을 의미한다. 이를 응용하여 한 사람을 ‘관성적인 사람’이라고 표현한다면, 일상적인 관습이나 습관에 따라 움직이거나 행동하는 경향을 가진 사람을 뜻할 거다. 관성적인 사람은 아마도 변화나 새로운 시도에 대해 저항이 강할 수 있고, 편안한 영역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을 수 있다.
이렇게 풀어서 생각해 보고 나니 더 물음표가 생긴다. 나는 관성적인 사람인가? 나는 변화나 새로운 시도 대신, 편안한 영역을 꿈꾸는가?
내가 생각하는 것 말고,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보았는가 생각해 보면서 예전 평가 기록을 뒤적였다.
*“담당 업무의 규모가 커서 주니어로서 쉽지 않은 환경이지만, 긍정적인 자세를 기반으로 한 높은 조직 적응력을 가지고 잘 헤쳐가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2019, 1년차)* <br>
*“어느 정도 익숙해진 API CENTER에서 RMS로 본인의 성장을 위해 선택한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연차에 상관없이 성장 의지를 가지고 성실하게 잘 해주시고 있습니다.” (2020, 2년차)* <br>
*“입사 후부터 지금까지 늘 본인이 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이 요구되는 자리에 있었지만, 그걸 또 잘 해나가고 있는 놀라운 사람입니다.” (2021, 3년차)* <br>
*“그 와중에도 끊임없이 방법을 찾으려 애쓰고 시도해 나가는 모습을 높게 평가합니다. (2022, 4년차)* <br>
*“회사에서 하고 싶은 일만 할 수 있는 건 아닌데, 이런 상황에서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을 찾고 제안하는 게 매니저 입장에서는 아주 고마운 사람이에요.” (2023, 5년차)* <br>
그렇다면, ‘이니셔티브’ 이 단어는 정말 나를 설명해 줄 수 있는 단어일까? 이니셔티브를 한국어로 번역하면 ‘주도권’이다. 이니셔티브 있는 사람이라고 하면, 주도적이고 적극적으로 일을 추진하며, 문제를 해결하고 변화를 이끌어내는 경향이 있다고 볼 수 있겠다. 나에게 있어 ‘주도권’은 가장 중요한 가치관이다. 시간의 주도권, 공간의 주도권, 마음의 주도권, 사랑의 주도권.. 내가 스트레스 받았던 환경을 떠올려보면 주도권을 침범 받거나 무시당했을 때인 경우가 많았다.
그럼 이번에는 그동안의 평가 기록에서 이니셔티브를 찾아보자.
*“단독 업무임에도 여러 팀들과 소통하며 기획자로서의 본인의 스킬을 조금씩 성장시키고 있는 부분과 여러 의견을 듣고 결과물을 만들어 내면서 한 번으로 끝내지 않고 여러 번의 시도를 하는 모습이 강점입니다.” (2019, 1년차)* <br>
*“자신의 업무에 대해서 끊임없이 관리하고 개선할 포인트를 짚어내려고 노력하시는 모습에서 좋은 영향력을 많이 받습니다. 어쩔 때는 아무도 꺼내고 싶지 않은 주제도 먼저 이끌어내주셔야 할 때도 많은데, 특유의 오픈 긍정 마인드와 논리적인 사고방식으로 문제를 풀어나가시는 게 강점이라고 생각합니다.” (2020, 2년차)* <br>
*“전체를 보고자 하는 노력과 문제를 구체화 해나가고자 하는 노력은 앞으로 스스로 역량 발전에 큰 밑거름이 될 거라 생각합니다.” (2021, 3년차)*<br>
*“올해도 변화된 역할로 여러 난관들이 있겠지만, 특유의 도전정신으로 잘 헤쳐나가실 거라 믿습니다.” (2022, 4년차)*<br>
*“민석님은 어디 허허벌판에 던져놔도 뭔가 할 일을 찾아서 할 사람이니까요.” (2023, 5년차)*<br>
이렇게 돌아보고 나니, 확실히 나는 관성보다는 이니셔티브에 더 가까운 사람 같다. 이 글을 정리하면서, 나도 누군가를 바라볼 때, 한 조직에 오래 있었다는 이유로 ‘관성적인 사람’ 혹은 ‘주도적이지 않은 사람’으로 바라보는 시선을 갖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을 제대로 들여다보고, 이력을 들여다봐야만 알 수 있는 일들이 있다. 나의 이력이 스타트업 업계에 맞지 않을 수는 있지만, 적어도 나의 지난 5년을 ‘관성적이었던 시간들’이라고 표현하기에는 조금 억울하다. 억울하니까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거겠지.
IT 업계를 비롯하여, 요즘 내 또래는 이직이 잦다. 스타트업 대표의 말마따나 ‘3년도 오래 다닌 건데, 5년이면 정말 오래 다니신’건지도 모른다. 내가 이 회사를 언제까지 다닐지, 다닐 수 있을지, 솔직히 잘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이 시간들을 그저 버틴 시간으로 생각하지 않아야겠다.
누구보다 내가 제일 잘 알잖아.
내가 이곳에서 5년을 어떻게 지내왔는지. 어떤 시간을 지나오고 견뎌왔는지.
나는 돌부리에 걸려 앞으로 넘어져서 코가 깨지면, 다시 뒤로 걸어가서 돌부리가 어떤 돌부리였는지 탐색하고 기록해두는 사람이다. 돌부리 사진을 찍어 돌부리에 트라우마가 생기지 않도록 노력하는 사람이다. 마냥 걷다가 또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고, 또 넘어져서 코가 깨지고 깨져도 모르는 그런 관성에만 휘둘리는 사람이 아니다. 아무도 몰라줘도, 나는 그걸 알아야 한다. ‘이니셔티브’라는 거창한 단어까지는 아니더라도, 나는 적어도 내 삶과 업무의 주도권을 놓치지 않으려는 사람이라는걸. 스스로에게 꼭 알려주고 싶었다.
5년 동안 고생했고, 앞으로는 더 행복하자! 근속 5주년 축하해 :)
이 글을 쓰고 5개월 뒤, 나의 정규직 첫 회사였던 엔씨소프트를 퇴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