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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자리의 모양을 찾아서] #6. 외로움과 독감을 이겨내고 최종 면접까지

*글 속의 사건은 2018년 말의 일이다.

외로운 취준 생활을 버티게 해 준 외롭지 않은 기획자 학교

하반기 공채 전형을 열심히 지나고 있던 10월 말, 우연히 외롭지 않은 기획자 학교(이하 외않기) 공고를 봤다. 진아 님이 하시던 사이드 프로젝트로, 내가 참여한 3기를 끝으로 현재는 종료된 상태다. 외않기의 모집 공고를 읽으며 취업 준비와 별개로 외않기 활동을 시작하는 것 만으로 두근거리는 마음이 있었다. 취업 준비 과정에서 그동안 해온 일을 정리하며 찾아낸 '서비스 기획자'라는 직무가 나의 결과 맞아 행복하면서도 확실한 건 아무것도 없어서 불안하던 마음이 있었는데, 외않기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이 불안함을 조금은 가라앉혀주지 않을까 싶었다.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좋은 프로그램이었다. 건축, 광고, IT 등 여러 업계에서 기획자로 일하는 여성 선배들과 만나는 것이나 다양한 경력과 나이를 가진 동료 여성들과 기획에 대해 이야기하고, 자신의 기획안을 만들어가는 모든 과정이 즐거웠다.

넥슨에 최종 불합격한 다음 날도 외않기를 가는 날이었다. 외않기의 여러 과정 중에서도 내가 제일 기다리던 '서비스 기획자' 선배인 옥지혜 님이 오는 날이었다. 그런데 일어날 힘이 없었다. 불을 끄고 방에 누워있었는데 아빠가 나를 불렀다. '너 오늘 어디 간다며!' 눈이 번쩍 떠졌다. 그래, 그래도 다녀오자. 계속 이렇게 축 처져있을 수는 없지. 을지로 위워크에 도착해서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외않기 동기들에게 '저 최종 면접 본 거 떨어졌어요!' 말해버리니 마음이 나아졌다. 나보다 경험 많은 언니들에게 털어놓고 나니 마음이 따뜻해졌다. 제일가고 싶었던 것을 해내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내 삶이 망한 건 아니라고 스스로에게 알려줬다.

최종 면접 3일 전, 독감에 걸려버렸다.

하반기에 지원한 회사에 다 떨어지고 마지막 하나 엔씨가 남아있었다. 1차 면접을 잘 보지 못했다고 생각해서 기대를 전혀 하고 있지 않았고, 신입으로 시작할 수 있는 좀 더 규모가 작은 회사의 공고를 찾아보고 있었다. 그렇게 기대 없이 보내던 중 1차 면접 합격 메일이 왔다. 이제 마지막 남은 최종 면접이었다. 마지막 기회를 어떻게든 후회 없이 보내보려고 열심히 준비했다. 학교 취업 준비 센터에서 해주는 모의 면접도 보고, 친한 오빠의 누나가 엔씨에서 서비스 기획자를 하신다는 소식을 듣고 질문도 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현직자'의 이야기는 소중했다.)

최종 면접을 3일 앞둔 일요일, 갑자기 열이 나기 시작했다. 일 년에 한두 번씩 심한 감기를 앓곤 했었는데 타이밍이 안 좋았다. 일요일 밤에는 열이 39도가 넘어가면서 정말 말 그대로 사경을 헤맸다. 머리가 뱅뱅 돌고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다음 날 오전에 학교 모의면접이 있어서 일찍 집을 나섰다. 학교 앞에 있는 이비인후과를 가서 진찰을 받았는데, B형 독감에 걸렸다고 했다. 의사는 일주일 동안 집 밖으로 안 나가는 게 좋다고 했다. '저 3일 뒤에 최종 면접 보러 가야 되는데요ㅠㅠ?' '많이 중요한 면접이에요?' '네..' '그럼 마스크 끼고 가서, 면접 볼 때만 마스크 벗어요. 약 잘 먹고, 면접 전날까지는 집에 가만히 있고!'

나의 강한 의지가 독감 바이러스도 이겼는지, 약이 잘 든 건지 모르겠지만.. 다행히도 이틀 정도 앓고 나니 면접 당일에는 많이 아프지 않았다. 오히려 컨디션이 정상이 아닌 덕분에 차분해져서 평소보다 흥분하지 않고 말을 잘하고 왔다. 하고 싶었던 이야기, 준비한 이야기를 차분하게 나누고 건물을 나왔다. 구름 한 점 없이 하늘이 파랗던 겨울이었다.

최종 발표가 나기 전날에도 3030 보드에 차분히 기록을 남겼다.

결과가 어떻든, 넌 더 멋있는 사람이 될 거야. 성공하면 성공한 대로, 실패하면 실패한 대로. 다 내 안의 경험이 쌓이는 거니까. 앞으로 한 발 더 나아가지 못한다 해도, 넌 못난 사람이 아니야. 쓰고 싶었던 글도 쓰고 만나고 싶었던 사람도 만나. 운동도 하고 눈도 밟고. 잘할 수 있어. 잘 살 수 있어.

근로 종료 기한이 없는 세 번째 근로 계약서

엔씨에 최종 합격을 했고, 근로 종료 기한이 없는 정규직 근로 계약서를 썼다. 마을 공동체 활동가, 아름다운 가게를 지나 나의 세 번째 근로 계약서였다. 신입 공채 OT에 참석해서 동기들을 만나고, 회사 건물을 둘러봤다. 사원증 촬영, 채용 검진까지 마치고 나니 진짜 새로운 회사에 입사할 준비가 끝났다. 새로운 시작을 주변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여기저기 연락을 했다. 추운 겨울에 좋은 소식을 전하니 다들 제 일처럼 기뻐해 줬다. 새로운 챕터가 또다시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shape-of-belonging #year-2024 #에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