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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세미나를 준비하며

1.

2014년 4월 16일 오전 10시의 서울하늘은 안개인지 미세먼지인지 모를 뿌연 것으로 가려져 있었다. 나는 학교에 가는 2호선 지하철에서 창밖을 내다보며 “고담 시티 같네.” 하고 생각했다. 지금와 생각해보면 고담시티 같다, 라는 생각은 그 날 있었던 ‘사건’의 복선과도 같았다. 고담은 배트맨의 배경이 되는 도시다. 흔히들 아는 조커, 같은 사이코패스 악당들이 등장하고 그 외에도 마피아, 야쿠자 등등 거물급 범죄자들이 판을 치는 (가상의) 도시다. 그리고 이렇게 막장도시가 된 주요 원인은 바로 사회 안전망의 부재와 공무원, 경찰의 부정부패이다. 그래도 다행인 건, 어둠의 기사 배트맨의 존재다. 배트맨은 밤마다 고담시를 지킨다. 그랬다. 그곳엔 배트맨이라는 돈도 많고 의협심도 쩌는 히어로가 있었다. 다시 2014년 4월의 기억으로 돌아간다. 4월 17일 나는 텔레비전 앞에 앉아있었다. 화면에서 커다란 배 한척은 결국 기울어 물속에 잠기고 말았고, 이를 중계하던 리포터는 침묵만을 내보냈다. 그 시간 이후로 진실은 계속 침묵한 상태였다. 원인을 밝혀내려 하지 않았고, 자꾸 무언가를 숨겼다. 그래서 그 싸움은 지난했고, 배트맨 같은 히어로 또한 존재하지 않았다. 

2.

사실 그대로를 보고 싶었다.

3.

내가 겪은 첫 번째 사회적 충격이다. 

4.

2014년 4월의 일을 입에 담는 것이 괴롭다. 이 괴로움은 나는 결국 아무것도 하지 못했음을, 못할것임을 알기에 느끼는 감정이다. 이 괴로움은 나의 수치심에서 기인한다. 

5.힘이 없다고 모두가 포기했을 때, 어떻게 될까.

6.

지하철을 탈 때마다 생각한다. 만약에 사고가 크게 나서 이 안에 있는 사람이 모두 죽는다면? 누구도 구조해 주지 않는다면?

7.

명량과 해적이 잘 되지 않을거라 예상했다. 하지만 그 예상을 비웃기라도 하듯 명량은 천칠백만 관객수라는 역대 1위 흥행 기록을 꿰찼다. 명량대첩은 맹골수도에서 벌어졌다. 세월호 또한 맹골수도에서 침몰했다. 4개월이 지났지만, 우리의 연민은 정오의 그림자처럼 금세 사라졌다. 

8.

4월 세월호 세미나 기획글을 쓰면서, 너무 많은 생각을 했더니 머리가 터질 것 같습니다. 구구절절한 사연들 다 빼고 제가 생각하는 세미나 ‘의도’만 말하자면 이 세미나를 통해 어떤 ‘진실’에 다가서려 한다는 것입니다. 그간 감정에 휩싸여 혹은 연민에 사로잡혀 세월호를 똑바로 보지 못했던 우리에게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진실을 받아들일 일말의 수치심입니다. 진실을 받아들이고, 길고 긴 부끄러움을 느낄 수 있는 나 자신입니다. 

9.

그렇게 언론은 계속해서 침묵했다. 진실에 다가서려는 노력은 보이지 않았다. 대신 자극적인 이야기들을 내보냈다. 대통령의 눈물, 유병언의 죽음, 유가족 모함 등. 그것으로 세월호는 떠들 만큼 떠들었다. 라는 끔찍한 이야기를 듣게 만들었다. 대한민국에는 히어로가 등장하지 않았다. 

10.

그래서 진실이 무언지 알기 위해선 너무나 많은 품이 들었다. 그 품을 들여 노력한 사람들을 제외하고 대다수의 국민은 진실에 대해서 알 여유조차 가질 수 없었다. 너무 피곤했으니까. 그래도 세월호를 생각하며 눈물을 글썽였고, 슬퍼했다. 진은영 시인이 그런말을 했다. 우리의 연민은 정오의 그림자처럼 짧고, 우리의 수치심은 자정의 그림자처럼 길다고. 그랬다. 세월호에 대한 우리의 연민은 아주 빨리 잊혀지고 사라졌다. 대신 수치심을 느낀 이들만이 끝까지 남아 싸웠다. 

11.

2015년 4월, 그동안 잊고 지낸 사람들도 매일 매일 기억한 사람들도 함께 한 자리에 모인 날이었다. 그 날 나는 수유역에서 플래시몹을 하고, 피켓을 들고 미아역까지 함께 걸은 후 지하철을 타고 광화문으로 갔다. 큰 욕심은 없었다. 그저 1주기를 추모하고, 꽃을 두고 집에 갈 생각이었다. 꽃을 두러 가는 길은 참 멀었다. 걸어도 걸어도 길이 보이지 않았다. 행렬은 길었고, 경찰은 그 행렬을 막고 섰다. 물대포와 캡사이신을 뿌려댔고, 사복경찰은 막힌 길로 우리를 안내했다. 나는 내 앞을 막고 선 경찰 무리에 몇마디 욕지거리를 내질러보기도 했지만, 금방 물러섰다. 그리곤 서브웨이에서 산 콜라의 얼음을 오독오독 씹으며 집으로 돌아가는 지하철을 탔다. 여전히 내 손엔 국화가 들려있었다. 

12.

2016년 4월이 다가온다. 나는 세월호가 물에 잠긴 2014년 4월, 본능적으로 이곳이 고담과도 같다는 생각을 했고, 2015년 4월 내 앞을 막아선 경찰무리에 별다른 저항도 하지 못하고 돌아섰다. 그리고 다시 다가온 2016년 4월. 도대체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 것일까.

13.그날의 기록이 아니었다면, 내가 무슨 염치로 세월호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었을까. 그날의 기록, 진실에 다가서려는 노력. 연민이 아닌 수치심을 느낄 그 진실에 대해 ..

#year-2016 #에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