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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도_팝니다

철학과 소논문 과제로 썼던 글

경찰의 과잉 진압으로 백남기 농민이 쓰러졌던 2015년 11월 14일. 나는 그 날 인사동 골목 한 술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 정치적 성격을 강하게 띠는 가게인 덕에 온갖 집회가 열리는 토요일이면 사람이 많았다. 그날은 아주 큰 집회가 열렸고 그만큼 가게는 사람들로 북적북적했다. 캡사이신 물대포를 맞은 가방을 씻는 사람, 마당에 놓인 난로에 젖은 양말을 말리는 사람. 그렇게 북적대는 사람들 사이에서 음식을 나르며 정신없이 일 하던 중 어디선가 전화를 받은 사장님이 손님들에게 크게 외쳤다. ‘경찰 물대포에 맞아 백남기 농민이 돌아가셨답니다!’ 가게엔 잠시의 정적이 흘렀다. 나는 아직 그때의 분위기를 기억한다. 마치 내가 역사의 한 장면에 있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그 기분. 그로부터 1년이 지난 2016년 11월, 나는 또 다시 역사의 한 장면에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번엔 나 혼자만이 아니었다. 많은 국민들이 자신이 중요한 역사적 한 장면에 놓여있다고 말했다. 많은 사람들은 길거리로 쏟아져 나왔고 자연히 내가 일하는 가게에는 손님이 미어터졌다. 그래서 나는 2016년 11월 매주 토요일 밤을 아르바이트로 보내야했다. 나는 역사의 한 순간에서 인사동 알바생이었던 것이다.   나는 아르바이트를 해야 했으므로 촛불 행진이나 문화제 행사에 모두 참여할 수는 없었다. 그렇지만 매주 기록을 경신하는 촛불의 숫자와, 늘어가는 사람들의 관심을 보며 세상이 조금은 바뀌지 않을까 두근거리는 희망을 품었다. 경기 불황으로 파리만 날리던 종로, 인사동 골목골목에는 사람들이 가득 찼다. 내가 일했던 가게의 사장님을 비롯하여 많은 종로 일대 자영업자들의 얼굴에 웃음꽃이 폈다. 사람들은 드디어 박 대통령이 창조경제를 이룩했다며 자조 섞인 말들을 했다. 실제로 내가 일하던 가게의 매출이 평소 10배 이상 뛰었으니 틀린 말도 아니었다. 그런데 그마저도, 나에게는 빗겨나 있었다. 나는 역사의 한 장면에, 어떤 혁명의 한 순간에 있다고 느끼고 있었지만 사실 그저 시급 7000원을 받는 알바생일 뿐이었다. 그리고 알바생의 눈으로 본 ‘혁명의 순간’은, ‘혁명 장사’로 호황을 이루는 사람들의 모습으로 채워졌다. 종로 일대의 반짝 호황을 ‘혁명 장사’라고 부르는 것은 비약일까? 사람들은 종로거리에 나와 소리를 지르고 행진을 하고나서 우리 가게에 오는 것을 어떤 코스로 여기는 듯 보였다. 가게에 와서 사람들과 투쟁가를 부르며, ‘그래 집회 있는 날엔 OO와서 술 좀 마셔주고 집에 가야지.’ 라는 이야기들을 했다. 나는 별 특별할 것 없어 보이는 사람들의 이 말을 왜 삐딱하게 보게 되었을까. 집회가 열리는 토요일이면 종로 일대의 편의점은 만원이었다. 편의점에서 사람들은 초를 사고, 종이컵을 샀다. 길거리에서도 사람들은 이것저것을 사고 팔았다. 전통적인 아이템 종이컵에 꽂힌 초부터 바람에도 꺼지지 않는 LED 촛불, LED 촛불의 여러 가지 변형태들(머리핀, 머리띠 등등..)이 넘쳐났다. 박근혜 대통령이 3차 대국민 담화를 하고난 후 국민들의 분노가 극에 달했을 때는, 길거리에서 만원에 횃불을 팔기도 했다. 누군가는 이러한 상황에 대해 ‘자본주의 시스템 내에서 멋진 아이템으로서의 상징만 남은 혁명의 한계가 재밌다’고 말했다.   기 드보르는 <스펙타클의 사회>에서 스펙타클의 본질적 운동에 대해 언급하며, 상품이 인간 활동의 역동성을 정체적인 것으로 만든다고 말한다. 상품세계는 경험되는 모든 것을 지배한다. 상품은 사회적 삶을 점령하고 인간 사이의 운동성을 소외시킨다. 상품이 쉽게 만날 순 있지만 실제론 가장 모호한 존재인 것처럼, 2016년 11월 광장의 ‘아이템’들도 쉽게 구입할 순 있지만, 실제론 그 혁명의 가치가 어떻게 반영되고 있는지 모호한 것이 되어버렸다. 그들이 가게에서 즐기는 술과 공간, 만원을 주고 구입한 횃불, 천원 주고 구입한 LED 촛불머리핀 등이 어떤 ‘혁명의 상징’, ‘상품’, ‘아이템’ 이상의 역할을 하고 있을까.   분명 광장의 아이템들은 인간의 역동성을 상품으로 고정시켰다. 또한 사람들이 혁명에 대해 사유하는 것이 아니라 혁명을 소비하게끔 만들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아이템으로 ‘연대’하게 된 사람들의 존재는 부정할 수 없다. 혁명의 한 순간에서 혁명 장사가 이루어졌지만, 그 혁명 장사로 인해 사람들이 연대감을 느낀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상품’이 갖는 힘은 그것을 가진 사람들에 한하여 ‘동질감’, ‘연대감’을 주는 것이다. 많은 경우 그 연대감과 동질감은 ‘특권 의식’ 따위의 부정적인 결과를 낸다. 그러나 이번 11월 광장에서의 연대감은 달랐다. 토요일이 지나고 신문 1면에 나는 수많은 촛불 사진을 보며 또 다시 사람들은 토요일 광장에 모였다. 그리고 사람들은 우리가 무언가 바꿀 수 있다고, 나 혼자서만 분노하고 있는 게 아니라는 ‘연대감’을 느꼈다. 기 드보르의 의하면 비판 받아야 마땅한 ‘상품’으로써의 ‘혁명’이 ‘연대’를 가능하게 하며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게 된 것이다. 실제로, 이 촛불의 연대는 11월 한 달간 이어지며 2016년 12월 9일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을 이끌어냈다. 이 성취는 모두가 인정하듯, 촛불의 힘이었다. 이후의 상황은 불분명하나, 사람들이 연대하였다는 것 그 연대의 힘이 상품으로부터 비롯되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대한민국에는 연대를 가능하게 하는 스펙타클의 예가 또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2016년 ‘페미니즘 굿즈’이다. 2016년은 대한민국 페미니즘 원년이라 불릴 만큼 다양한 사건이 있던 해였다. 그 중 가장 많은 논란이 되었던 것은 ‘넥슨 클로저스 성우 교체 논란’이었다. 이 사건은 메갈리아4라는 넷페미니스트 단체에서 관련 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진행한 ‘한 장의 페미니즘으로 세상과 맞서다.’라는 프로젝트로부터 시작되었다. 본 프로젝트에서는 ‘Girls Do not need a prince’라는 문구가 새겨진 반팔 티셔츠를 판매하였는데, 총 후원자 수가 자그마치 4103명으로 초기 목표액의 1448%를 달성하며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다. 프로젝트 마감 후 많은 후원자들이 티셔츠를 입고 자신의 SNS에 글을 올렸는데, 그 중 성우 김자연이 메갈리아4 티셔츠를 입고 SNS에 인증한 것에 반발한 네티즌들의 집단 보이콧이 일어났고 다음날 김자연 성우는 게임회사 넥슨으로부터 계약을 해지 당한다. 또한 게임 ‘클로저스’에서 김자연 성우가 담당했던 캐릭터의 음성이 다른 성우의 녹음으로 교체되기도 했다. 이에 대해 많은 여성들이 넥슨의 부당 계약 해지에 맞서 항의하는 시위를 벌였고, 인터넷 공간에서도 김자연 성우의 부당함을 알리는 글들이 이어졌다. 이 후 서브 컬쳐계에서 ‘YES CUT’운동이 일어나며 김자연 성우 지지를 표명한 웹툰 작가들에 대해 불매와 별점 테러등이 자행되었다. 또한 진보 정당인 정의당에서는 초기 문예위에서 낸 김자연 성우 지지 논평을 철회하는 등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이 사건은 대한민국에서 ‘페미니즘’을 바라보는 부정적인 시각을 강하게 드러내기도 했지만, 페미니스트들에게는 ‘티셔츠 한 장’으로 연대하는 연대감을 느끼게 해준 사건이었다.   메갈리아4의 티셔츠 이후, 많은 페미니스트 단체들의 굿즈 판매가 이어졌다. 이 굿즈 판매는 주로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 텀블벅이나 오프라인 모임 등에서 이루어졌는데 판매를 개시할 때마다 후원액을 초과 달성하며 매진을 기록하고 있다. 많은 페미니스트들은 같은 뱃지를 달고, 같은 가방을 메고, 같은 스티커를 붙이고, 같은 다이어리를 쓰며 연대한다. ‘상품’으로서 연대한 이들은 ‘우리는 서로의 용기가 될거야’라고 다독인다. 상품을 통해 자신을 드러내고, 자신과 같은 생각을 갖는 이들과 만난다. 그 마음은 용기가 되고 세상을 바꿔나간다. 결국 기 드보르가 끊임없이 비판한 스펙타클, 근본적으로 자본과 결합되어 있으므로 자정이 불가능한 스펙타클은 현재 대한민국에서 ‘연대의 가능성’으로 바뀌고 있다. 혁명도 파는 고도의 자본주의 사회인 동시에 연대의 가능성으로 ‘~도 판다’는 말이 부정적이게 해석되지만은 않는 사회이다. 그 자신만을 위해 발전하는 스펙타클이 곧 서로의 용기가 되는 이 역설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덧. 내 머릿속에서만 연결되는 별개의 사건들을 글로 연결시키는 일은 항상 어렵다. 이번 에세이에서도 혁명과 자본주의, 스펙타클과 상품, 그리고 페미니즘과 굿즈에 이르기까지 전혀 별개의 키워드들을 하나로 엮어내려다보니 끼워맞추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그래도 이번 에세이는 어느 정도 개연성을 확보했다고 생각하는데..앞으론 가지치기를 더 잘 해보자.

#year-2016 #에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