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코보 - 모래의 여자
어느 여름, 설레는 마음으로 제주도행 비행기를 탔다. 꿈꾸던 가치가 곧 실현되리라는 희망에 부풀어 실연의 쓰라린 아픔도 잊은 나였다. 그건 분명히 관념의 체험이었다. 그러나 '청년 정신', '공정 여행', '집단 지성' 모든 희망의 단어가 총출동된 그 5박 6일은 끔찍했다. 서로를 배려하는 청년 정신은 없었고, 지역을 위한 공정여행도 없었다. 각자가 가진 지성을 모은다는 집단 지성은, 하늘을 날아 가지고온 2.6kg짜리 노트북을 휴대폰 충전기로 전락시켰다. 그 5박 6일의 체험은 나로 하여금 관념의 체험 이라는 공포를 느끼게 했다. 미래에 대한 두려움마저 가져왔다. 어느 겨울, 모래 구덩이에 갇힌 니키 준페이를 보았다. 단조로운 그의 삶에 유일한 희망적 관념은 모래였다. 경이로움마저 느꼈다. 그 여름날들이 떠올랐다. 그저 ‘그래도 배운 게 많았지’ 라는 말로 덮어두었던 그 날들이 떠올랐다. 만약 내가 그곳에서, 그 끔찍했던 5박 6일에서 벗어나지 못했더라면? 새끼줄 사다리가 사라졌듯 뭍으로 돌아오는 비행기가 사라졌더라면? 그래도 나는 그래도 배운 게 많다, 라는 말을 할 수 있었을까. 나의 관념이 체험되는 그 순간. 희망이 공포로 변화하던 그 순간. 그 순간을 거쳐 돌아왔기에 그땐 그랬지, 라고 회고할 수 있는 건 아닐까.
모래로 인해 그의 삶이 좀 더 나아지지 않았느냐 하는 생각. 아니 나아졌다기 보다도, 그가 바랐던 삶을 살고 있지 않느냐 하는 생각 말이다. 다른 사람들로부터 달라 보이고 싶었던 그 아니었던가. 그래서 2박 3일의 휴가를 떠날 때도 자신이 어디로 가는지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지 않았던가. 신비로워 보이고 싶은 어떤 욕망이 그 안에 숨어있던게 아니었을까. 그런데 그 욕망은 곧 모래 구덩이에서 살게 되면서 실현되었다. 외부의 사람들로부터 그는 '행방불명 상태'가 되었고, 7년이 넘는 시간동안 그의 모습 어떤 것도 사회에 드러나지 않았다. 그렇다면 그가 바랐던 다른 사람들로부터 다른 누군가. 어느 정도는 실현한 것이 아닐까. 그런데 또 그것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결국 인간에게 있어 의미 있는 삶 같은 건 그 누구에게도 주어지지 않은 것은 아닐까. 무엇을 바라는 것 자체가 인간에게 주어진 능력 밖인 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