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minseok.com

마라톤과 락페스티벌 그리고 광장

둘 중에 하나만 골라 '윤석열 파면!'
하나만 선택해 '윤석열 파면!'
<트와이스 - yes or yes>

어제는 3월 8일 세계 여성의 날이자 서울 구치소에 수감되어 있던 현직 대통령이 석방된 날이었다.

2024년 12월 3일 비상 계엄 선포 이후로 광장에서는 많은 이야기가 있었다. 선결제, 푸드 트럭, 난방 버스, 응원봉 집회, KPOP 집회, 개성있는 개인의 깃발들, 혐오 발화를 막는 사람들... 이 많은 이야기를 알고 있었음에도 광장에 한 번도 나가지 못했다.

첫 번째 탄핵 소추안이 발의되었던 날에 여의도에서 지인을 만나서 함께 집회에 가려다, 사람이 너무 많이 몰리는 바람에 여의도 진입에 실패한 뒤로, 여러 이유를 대며 미뤄왔다. 감기 기운에 몸이 안 좋다는 이유로, 다른 약속이 있다는 이유로, 평일 동안 일하느라 너무 지쳐서 주말은 쉬고 싶다는 이유로. 그러면서도 언제든 광장에 나서고 싶었다. 2016년 탄핵 집회 때, 통제한 종로 거리를 걷는 그 느낌이 얼마나 시원했는지 알았기 때문이었다.

그 넓은 광장에서 대한민국 헌법 제1조를 노래로 만든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를 부르며 걸으면,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의 문장 한 줄이 온 몸으로 감각되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광장이 좋았다.

광장의 깃발들

어제의 광장은 안국역부터 광화문을 지나 경복궁역까지 엄청난 인파로 가득 차 있었다. 해가 지기 전에는 파란 하늘 아래 수많은 깃발들이 보였다. 깃발이 중간에 있으면 시야를 방해해서인지 기수들이 모여있는 곳이 따로 있었다. 한 공간에 모여서 깃발을 들고 기다리고 있다가, 함께 지지해야 하는 발언이 나오면 깃발을 흔드는 모습을 보면서 기시감이 느껴졌다.

이거 완전 락 페스티벌이잖아? 사실 락 페스티벌보다 광장 깃발의 수가 100배쯤은 되는 것 같지만. 깃발을 손에 든 기수들의 비장함 같은 것, 그에 비해 웃긴 깃발의 내용들, 상황에 맞추어 펄럭이는 깃발의 모습들. 여름에 펜타포트, 렛츠락, 부락 가는 분들이 겨울에는 집회 깃발러로 참여하시는 건가 싶을 정도로. 저 깃발 다 들고 여름 락 페스티벌 가도 재밌겠다.

무대에서는 발언이 이어졌다. 3/8 여성의 날을 맞아, 페미니즘 의제를 이야기하는 발언자가 많았다. <내란 극복과 민주주의 회복을 위한 3.8 여성 1만인 선언>을 여러 명의 여성이 무대에 올라 읽는 시간도 있었다. 그 시간에 많은 사람들이 함께 환호하고, 응원하고, 지지한다는 그 느낌은, 윤석열이 처음 당선되었을 때 느꼈던 무력감을 치유해주는 것 같았다.

광장의 여성을 외면하는 민주주의는 민주주의가 아니다. 여성의 고통을 외면하는 민주주의는 민주주의가 아니다. '아내 밟는 자 나라 밟는다!'던 1950년대 여성 운동가들의 외침을 이어받아 2025년의 우리는 이렇게 외치고자 한다. "여성 밟는 자 나라 밟는다!"

위헌적 계엄령과 친위 쿠데타로 내란을 일으킨 내란수괴 윤석열의 정치는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는 망언으로 대표되는 반여성정치에서 비롯되었다.

그러므로 윤석열의 퇴진은 반여성정치의 퇴진이다. 민주주의의 회복은 성평등정치의 귀환이다.

<내란 극복과 민주주의 회복을 위한 3.8 여성 1만인 선언> 중
전문 링크

어느새 해가 지고 행진을 시작했다. 행진은 광화문 앞에서 시작해, 안국역과 조계사 앞을 지나, 종각에서 코너를 돌아 종로 3가까지 이어졌다. 이어지는 행렬 속에서 사람들은 '윤석열 파면' 구호를 외치기도 하고, 트럭에서 나오는 노래에 맞춰 응원봉을 흔들거나 구호를 외쳤다. 거리에는 브라질리언 퍼커션 앙상블 호레이의 공연, 노래패의 공연이 곳곳에서 열렸다.

아니 이건 마라톤이잖아? 마라톤을 나가면 길거리에 응원하는 사람들의 춤 공연, 노래 공연, 악기 공연 등이 이어진다. 그래 이건 마라톤이지. 우리의 민주주의를 되찾기 위한 마라톤. 짧은 시간에 이루어지는 게 아니니까, 모두가 힘을 모아서, 서로 응원하면서, 오래도록 달려야지. 퍼커션의 신나는 두드림을 들으며 걸으며 생각했다.

종로쯤 가니, 트럭마다 앞에 서서 행진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아니 이건 퀴어퍼레이드잖아? 무리마다 조금씩 성격이 달라 보였다. 특정 정당이 함께 모여있는 트럭도 있었고, 또 그렇지 않은 트럭도 있었다. 나는 한참을 걷다가, 대학생들이 많은, 가장 뒤에 있는 트럭 앞을 함께 걸었는데, 또 즐겁고 재밌었다. 민중가요와 케이팝이 번갈아 나오는 트럭 앞에서 나보다 열 살은 어릴 것 같은 친구들과 함께 걸으며 외치며 다시 광화문으로 돌아갔다.

칼박자의 깃발들

광화문으로 다시 돌아온 뒤에, 사람들이 모두 돌아올 때까지 여러 음악이 나왔다. 코요태의 '우리의 꿈'과 데이식스의 'Happy'에 맞춰 칼박자로 깃발을 흔드는 사람들, 구속 취소된 날 부르기에 너무 적합한 선곡들이었다.

외로움과 두려움이 우릴 힘들게 하여도 결코 피하지 않아
끝없이 펼쳐진 드넓은 바다의 희망이 우리를 부르니까
거센바람 높은 파도가 우리 앞길 막아서도 결코 두렵지 않아
끝없이 펼쳐진 수많은 시련들 밝은 내일 위한 거야
코요태 - 우리의 꿈

MAY I BE HAPPY 매일 웃고 싶어요 걱정 없고 싶어요
아무나 좀 답을 알려주세요 SO HELP ME 주저앉고 있어요 눈물 날 것 같아요
그러니까 제발 제발 제발요 TELL ME IT'S OKAY TO BE HAPPY
데이식스 - HAPPY

나는 8시 반쯤 집으로 돌아갔지만, 집회를 주최하는 비상행동 측은 윤석열 탄핵 시까지 단식 농성을 이어간다고 했다. 응원하는 마음으로 작은 돈을 후원했다. 걸음 기록을 보니 만팔천보를 걸었다. 다리는 아팠지만, 광장의 시원함을 담뿍 느낀 시간이었다. 반나절 만에 마라톤, 락 페스티벌, 퀴어퍼레이드, 집회까지 다 즐기고 왔다. 이제 다음 주 파면만 기다린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윤석열 파면을 바라고 있고,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에게서 나오는데? 3개월이 넘는 시간 동안 광장에 나와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힘쓴 모든 분들의 노력이 헌법재판소의 제대로 된 판결로 돌아오기를 바란다.

#year-2025 #에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