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서울 지망생입니다>를 읽고 휘갈긴 노트
1. 자꾸 눈에 띄는 것들
나온지 한 달도 안된 따끈한 신간 <탈서울 지망생입니다>를 읽었다. 작년 가을부터 다거점 생활에 관심을 두면서 관련한 작업이나, 책이 있으면 찾아서 보는 습관이 생겼다. 찾기 시작하니 이미 관련한 일을 하거나,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이 많다는 게 다행이면서 불안한 마음도 들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관심이 있고 시도하고 있는데, 눈에 띄는 변화가 없다는 건 분명 쉽지 않은 일이라는 반증이기도 하니까.
2. 삶의 질과 삶의 터전
책은 '탈서울'이라는 주제를 크게 두 가지 관점에서 보고 있다. '삶의 질' 측면과, '삶의 터전' 측면.
'삶의 질' 측면에서는, 인프라와 주거 환경을 다룬다. 인프라는 서울을 벗어날 수 없는 이유이며, 주거 환경은 서울을 벗어나고 싶어하는 이유다. 서울에서만 누릴 수 있는 편의적인 인프라나 문화 자본 인프라를 놓을 수가 없어서 서울을 벗어날 수 없어 한다. 반면, 주거 환경은 서울을 벗어나고 싶게끔 만든다. 넓은 집에 살고 싶은 욕구, 공사 소리나 차 소리 같은 도시 소음이 없는 조용한 집에 살고 싶은 욕구 말이다.
'삶의 터전' 측면은 결국 일자리다. 생계를 담보할 수 없는 탈서울은 일시적일 뿐이다. 그리고 이 지점이 책에서 아쉬운 지점이기도 했다. 다양한 사람들과 인터뷰를 하긴 했지만, 결론이 '평범한 급여생활자는 어렵다' 였다는 것이 아쉬웠다. 어쩌면 내가 원격근무나 디지털 노마드가 비교적 자유로운 IT업계에 있기 때문에 크게 공감이 가지 않았을 수도 있겠다.
탈서울하고 싶다고 하면서 수도권에서 너무 멀지 않은 강원충청권을 살펴보는 내 모습이 떠올랐다. 수도권에서 얻을 수 있는 양질의 자원과 다수의 기회들로부터 너무 멀어지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하는 모습이 내 안에도 어느새 자리 잡고 있었다. <탈서울 지망생입니다>, 145쪽
3. 탈서울이 아니라 Expanded-서울
언론에서 자주 다루기 시작했다는 '탈서울'도 결국엔, 삶의 질과 삶의 터전 둘 다 포기하지 못한 사람들의 선택이었다. 서울보다는 더 나은 주거 환경을 원하면서도, 서울이 주는 인프라는 포기할 수 없고, 삶의 터전이 서울에 있으니 더 멀어지지 않는 경기도로 이사가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것.
이것을 탈서울이라고 볼 수가 있을까? 용어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서울은 경기도 너머까지 그 영토를 확장해있다. 경기도는 탈서울이 아니라 Expanded-서울이다.
행정 구역상으로의 '탈서울'이 틀린 용어는 아니겠지만, 사회학적 의미에서의 '탈서울'은 재정의가 필요할 듯 보인다.
■ 집따라 움직인다… 탈(脫)서울 이유 "넓고 좋은 집 찾아 삼만리" 2010년부터 저출산으로 총 인구가 줄고...
4. 다거점 생활을 꿈꾼다.
지금은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에 살고있다. 3년 전 판교로 취업하게 되면서 도저히 1시간 반의 통근을 견딜 수가 없어(서울 사람의 낮은 역치) 출근 3주만에 집을 구했더랬다. 운 좋게도 친구 아파트에서 7개월을 살았다. 그 집에서 나와 언니와 함께 지금 살고 있는 분당동의 투룸 빌라를 구하는 것까지 일사천리로 이루어졌다. 그 뒤로 코로나가 터지고, 이 집에서 머무는 시간이 늘어날 수록 조용하고 초록초록한 이 동네가 좋아졌고, 대체로 일이 다 잘 풀려왔던 것 같다.
그러다 작년 말 쯤부터 다거점 생활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코로나로 인해 재택 근무는 길어지고 있었고, 매일 컴퓨터 앞에 종일 앉아있는 직업이 지겨워졌다. 내가 이곳에서 성장하고,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게 된다해도 컴퓨터 앞에 종일 앉아있어야 하는 것은 변함이 없는 것 같았다. 지루했다.
단어가 주는 힘은 크다. 우연히 '다거점 생활'이라는 단어를 알게 되었고, 꿈으로 삼게 되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더 생각이 강해졌다. 아직은 내가 꿈꾸는 '다거점 생활'모델을 발견하지는 못했지만, 그 언저리에 있는 다양한 시도들을 보면서 나만의 것을 발견해내겠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일의 변화는 집과 삶을 바꾼다. ‘일→집→삶’의 연결변화다. 삶의 성공잣대였던 직주일체(근접)보다 직주분리형 행복 추구를 위한 거주공간이 부각된다. 최근 새롭게 실험 중인 ‘다거점생활’이 대표적이다. 일본에서 제기된 신주거트렌드로 직주분리의 절충형이다. 생활거점을 여러곳에 두고 생활하는 방식이다. 2011년 지진재해 이후 일종의 대피처로 주목받았는데, 지금은 개념·형태가 다양화하고 세분화됐다. 코로나19와 디지털화와 맞물려 단순한 ‘5도2촌(일주일 중 5일 도시 2일 농촌)’을 넘어 노마드형으로 장소에 덜 구애받지 않는 라이프스타일까지 포괄한다. 일본에서 ‘다거점생활 추천’ 등 관련 서적은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직장과 집은 최대한 가깝게? 생활거점 여러곳 두고 일하는 게 신거주 트렌드 [부동산360]>, 헤럴드 경제
5. 내가 원하지 않는 것
나만의 가치관이 명확하지 않으면 쉽게 인생에 휩쓸려 간다. 나처럼 사람 좋아하고, 금사빠에, 즉흥적인 사람이라면 더더욱.. 물론 어쩔 수 없는 상황도 있겠지만, 적어도 나만의 가치관이 명확하다면 회피가 아니라 선택을 할 수 있다.
내가 원하는 것을 생각하기 전에, 내가 원하지 않는 것에 대해 먼저 생각했다.
1) 어설픈 마을공동체 사업 이십대 초반 '마을'이라는 단어에는 학을 떼도록 몸서리치게 괴로웠던 경험이 있으므로, '마을'이라는 단어 앞에서는 잔뜩 경계심과 편견부터 생긴다. 어설프게 마을 공동체라는 이야기를 하는 곳은 의심의 눈초리부터 세운다. 나의 편견을 깨부숴줄 곳이 생기면 좋겠지만, 그 전까지는 계속 편견 덩어리의 시선으로 바라보게 될 것 같다.
2) 엄청난 대출을 깔고 앉은 집에 사는 것
"집이 없어도 힘들지만, 집을 마련하더라도 엄청난 대출을 끼고 허리띠 졸라매고 평생 살아야 하는 그 삶이 감당하기 어렵다고 했다."(<탈서울 지망생입니다>,161p.)
서울이나 expanded-서울에 집을 사려면 대출 없이는 불가능하다. 대출을 받는 것까지는 문제가 없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대출은 당연한 방법이기도 하고. 왜 다들 레버리지, 레버리지하지 않나. 그런데 대출을 받는 것 자체가 문제가 아니다. 대출을 받고 나서의 삶의 애티튜드가 달라지는 게 싫다. 동동거리면서 살고 싶지가 않다. 계속 저당잡힌 채로 살고 싶지가 않다. 레버리지를 내 의지로 땡겨야 하는데, 레버리지에 내 평화로운 삶까지 통째로 넘겨버리고 싶지는 않다.
6. 내가 가진 것
다거점 생활을 하려면 여러 기반이 필요하다. 책을 읽으면서 더더욱 깨달은 것은 '일자리'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 지금 내가 분당에 살고 있는 것도, 일자리 때문이 아닌가? 그렇네.
리모트 근무가 가능한 직무와 업계 나는 IT 업계에서 일하고, 그 중에서도 클라우드 플랫폼 관련 업무를 하고 있기 때문에 언제든 리모트 근무 환경으로 전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아직은 지금 재직 중인 회사에서 여러 측면에서 배울 점이 많아서 지금 당장 리모트 근무하는 회사로 옮길 생각은 전혀 없지만, 최소 5년 안에는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이미 있는 지방 거점 엄마의 고향인 전라북도 순창군 쌍치면에 할머니 집이 있고, 아빠의 고향인 충청남도 서천군 종천면에 할아버지 집이 있다. 두 곳 모두 거점으로 삼을 수 있는 후보군이다.
나만의 콘텐츠 자본과 커리어패스 회사에서 일하는 것 말고도 나만의 콘텐츠 자본과 그에 따른 커리어 패스가 있다. 한 달 생활비의 80%정도는 매 달 부수입으로 벌 수 있다. 지금은 일이 잘 들어오지만, 들어오지 않는다고 해도 나만의 콘텐츠 자본이 있으니 이걸로 뭐든 해볼 수 있을 터다. 삶의 터전에 일자리가 제일 중요한 요소인 걸 봐서, 1)과 3)에 에너지를 잘 분배하면서 키워내는 게 다거점 생활을 위한 초석이 아닐까 싶다.
다양한 분야의 아는 사람들, 커뮤니티 여기저기 바쁘게 움직이며 살았더니 아는 사람이 많아졌다. 한 다리 건너면 다 아는 좁은 한국이라지만, 내가 만나고 싶은 사람은 왠만하면 다 만날 수 있다. 다양한 지역에 아는 사람들이 있다. 제주도에는 자주 놀러가서 친해진 게스트하우스가 있고, 강원도 횡성에는 친한 친구의 집이 있다. 전라남도 순천에는 밴라이프 수향이 있다! 언론, 소셜 섹터, IT, 건축, 영화, 바이오 등 지인이 포진한 업계도 다양하다. 느슨하게 연결된 커뮤니티도 많다. 다거점 생활에는 사람들과 느슨하게나마 연결되어 있는 게 중요하다. 이제 인스타그램은 안하지만, 사람들과 연결될 수 있을 때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더 자주 떠들고 다녀야 한다. 그래야 안 될 일도 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