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인훈 - 광장
이명준이 중립국행을 택하지 않았더라면, 그가 바다에 그 자신의 몸을 던지는 일도 없지 않았을까 문득 생각해본다. 그가 중립국행을 선택하고 읊조리던 중립국에서의 생활을 떠올려본다. 그 속에 그가 평생 치열하게 고민해오던 이데올로기라든가, 사랑이라든가, 인간 실존문제 따위는 없었다. 하지만 그것도 그의 천성인지라 그가 생각이라는 것을 떼어 놓고 안정적으로 살아갈 수 있었을까? 그가 중립국행을 선택한 후 읊조렸던 것처럼 어느 병원의 경비원으로, 어느 마을의 소방관으로 고뇌하지 않고, 되는 대로 살아가는 그런 인생을 그가 진정 받아들이며 살 수 있었을까? 나는 그것이 불가능한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는 결국, 배에서 채 던지지 못한 자신의 몸을 중립국 어느 빌딩 옥상에서 해치웠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자신이 그리 될 것이라는 걸, 그 또한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을 것이다. 자신의 천성을 자신도 어찌할 수 없다는 것을. 그저 그런대로 사는 삶 같은 건 그에게 태어날 때부터 쥐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그래서 다시 생각해본다. 내가 저 때의 이명준이라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 아마도 남한을 선택하였을 것이다. 어느 한쪽에도 내가 사랑하는 사람, 정 붙일 사람, 하나 남아 있지 않지만 적어도 남한에는 일말의 자유가 남아있지 않은가. 그 자유 속에서 나의 천성을 맘껏 발휘해볼 희망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지 않은가. 나의 천성으로 인해 잃어버린 사람들과 고통 받은 시간들의 경험, 또 그 천성을 버릴 수 없는 나 사이에서 고뇌하고 고민하겠지만, 살기 위해 그저 목숨을 부지하는 것이아니라 진정으로 삶을 살아내기 위해 남한 행을 선택했을 것이다. 중립국으로 떠난 다는 것은 결국 그 자신을 무(無)의 바다에 던지는 것과 다름없으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