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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화과 처트니 샌드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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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다니는 회사의 건물은 판교의 랜드마크다. 장류진 작가의 일의 기쁨과 슬픔 표지에도 그려져 있다. 사실 나는 그 건물에서 근무해본 적이 없다. 나에게 그 건물은 피트니스, 식당, 야구단 행사장, 라이브러리, 상담실 뭐 그 정도다. 내가 입사할 때만해도 2000명 언저리였던 직원 수가 5년 새에 거의 2배가 늘었다. 그러면서 사옥에 모든 직원을 수용하기가 어려워졌고, 주변 건물을 임대해서 쓰기 시작했다. ​ 나는 입사할 때부터 외부 사옥에서 일했다. 내가 일하는 부서는 플랫폼 부서다. 게임 회사에서 플랫폼이라니. 딱 들어도 메인 사업은 아니다. 따지자면 기술 지원 부서다. 직접적으로 돈을 벌어다 주는 일을 한 적은 없다. 하려던 얘기가 이게 아니었는데 딴길로 샜다. ​ 어쨌든 내가 일하는 곳은 사옥이 아니고 외부 임대 건물이기 때문에 사내 식당이 없다. 임대 건물에 사내 식당을 왜 못만드는지 싶지만, 건물주가 주변 상권 운운하며 사내 식당을 못 만들게 했다고 한다. 대신 주변 식당에서 쓸 수 있는 식권 포인트 제도와 간단한 선식, 샐러드, 도시락 등을 가져다 먹을 수 있는 테이크아웃을 운영한다. 이 테이크아웃은 현대그린푸드에서 위탁 운영하는데 솔직히 말해 아주 맛있지는 않았다. 특히 도시락은...음... 샐러드도..음..... 그래도 내가 하나 딱 좋아하는 게 있다면, 샌드위치였다. 그 중에서도 무화과처트니 샌드위치. ​ 다른 도시락은 부실하게 느껴질 때도 있는데, 샌드위치는 정말 신선한 재료가 아주 가득 차있다. 샌드위치는 화목 석식에 고정으로 나온다. 석식 테이크아웃이 시작하기 전 퇴근하는 게 아니면, 꼬박꼬박 이 샌드위치는 챙겨먹었다. 작년 하반기 회사를 가는 것만으로도 매일 괴로웠던 어느 날에도 샌드위치는 챙겨서 집에 왔다. 상도 펴지 않고 불도 켜지 않고 거실 바닥에 대충 앉아서 멍하니 샌드위치를 먹었던 날도 있었다. ​ 오늘도 쉽지 않은 날이었다. 마음을 곱게 먹어야지, 어차피 이미 지난 일을 후회하거나 곱씹어서 스스로 괴롭지 말아야지 생각하면서도, 데모날은 정말 못 견디겠다. 그 사람이 한 일을 보고 같은 공간에 있는 것만으로도 괴로움이 차곡차곡 적립된다. 이제는 괜찮아졌겠지 했는데 아직도 안 괜찮다는 게 스스로 원망스럽기도 하다. 아무도 신경 안쓸텐데. 그리고 아무도 모를텐데. 나 혼자서 이렇게 괴로워하고 있는 게 좀 멍청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 오늘의 무화과 처트니 샌드위치는 역시나 신선하고 맛있었다. 사실 이 샌드위치를 먹을 수 있는 날은 오늘이 마지막이다. 내가 이곳을 떠나기 때문에 마지막이면 좋으련만, 다음주부터 위탁 운영 업체가 바뀌는 것 뿐이다. 이제는 이 맛있는 샌드위치를 먹을 수 없게 되겠네. 마지막 무화과 처트니 샌드위치를 먹으며, 괴로웠던 작년의 기억에 다시 빠져드는 이 순간도 마지막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year-2023 #에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