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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리즘반항클럽 #4 사회 — 편리함 뒤에 숨겨진 사람들을 위하여 Algorithm Rebels Club #4 Society. For the People Hidden Behind Convenience

넷플연가 모임 알고리즘 반항 클럽 마지막 4회차를 진행했습니다. 1회차의 ‘경험’, 2회차의 ‘주체성’, 3회차의 ‘관계’에 이어 이번 모임의 주제는 ‘사회 — 편리함 뒤에 숨겨진 사람들을 위하여’였어요.

모임에서 다룬 주요 콘텐츠는 아래와 같았습니다.

  • 책 ⟨로봇의 자리⟩ (전치형, 2024)
  • 책 ⟨먼저 온 미래⟩ (장강명, 2025)
  • 책 ⟨AI는 인간을 먹고 자란다⟩ (2025)
  • AI 윤리레터 ⟨치즈케이크, 낫 슬롭⟩ (ai-ethics.kr, 2024.11.27)
  • 기사 ⟨Inside an AI start-up’s plan to scan and dispose of millions of books⟩ (Washington Post, 2026.01.27)

1~3회차가 ‘나’에서 출발해 점점 바깥을 향해 시선을 넓혀왔다면, 마지막 4회차는 그 끝에서 ‘사회’를 바라보는 시간이었습니다. 매끄러운 화면 뒤에 숨겨진 사람들과 물질의 이야기를 꺼내놓고, 네 번의 모임이 수렴하는 지점을 함께 찾아보았습니다.

1. 10년 전의 그 공기, 그리고 바이브 코딩

모임은 딱 10년 전, 2016년 3월의 기억으로 문을 열었습니다.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대국이 있던 날이었어요. 저는 그때 컴퓨터공학과 3학년이었고, 철학과 복수전공 첫 수업인 서양 윤리학 강의실에 앉아 있었습니다. 교수님이 “오늘 알파고와 이세돌의 대국이 있는 날입니다”라고 말씀하셨고, 쉬는 시간 후 한 학생이 말했습니다.

“교수님, 알파고가 이겼습니다.”

그 순간 강의실에 흐르던 공기를 아직도 잊지 못합니다. 두려움, 불안함. 감정을 잘 드러내시지 않던 교수님 표정이 잠깐 흔들리는 게 보였어요.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국

작년에 출간된 ⟨먼저 온 미래⟩는 알파고 이후 바둑 세계가 어떻게 변했는지를 그리고 있습니다. 지금 바둑 세계 1위 신진서 9단의 별명은 ‘신공지능’이에요. 인공지능의 수와 가장 정확하게 둔다는 뜻이죠. 하지만 신진서 9단 본인은 이렇게 말합니다.

“예전에는 저 정도의 위치라면 제가 두는 수가 거의 정답이어야 했겠죠. 그런데 이제 AI가 그 수를 좋지 않은 수라고 하면 중계를 보시는 분들은 ‘저 사람은 랭킹 1위인데도 저런 수를 두는구나’ 하고 생각하실 수도 있죠.”

— 신진서 9단, ⟨먼저 온 미래⟩ 195쪽

인공지능이 인간의 거울을 넘어 기준이 되어버린 겁니다. ⟨먼저 온 미래⟩는 이걸 이렇게 표현합니다.

이것은 상금 수입이 줄어서가 아니다. 긍지와 관련된 문제다. 사람은 의미 있는 일을 자신이 잘해내가고 있다고 믿을 때 긍지를 얻는다. 인공지능은 예상보다 훨씬 넓은 영역에서 어떤 일의 의미와 인간의 유능함을 납작하게 짓눌러 버릴 것이다.

— ⟨먼저 온 미래⟩ 62쪽

먼저 온 미래

또 다른 프로기사의 말은 더 직설적이었어요.

“AI가 없던 시절이 훨씬 좋은 걸로 의견을 바꿀게요. 낭만의 바둑을 두던 예전이 그리워요. 전에는 어떤 새로운 수를 연구할 때 거기에 사람들의 노력과 열정이 배어 있었거든요. 그렇게 찾은 새로운 수에 환호하고 연구를 거듭하며 성장해 갔죠. 기술이 발전하면서 많은 사람이 몸은 편해지는데 영혼은 시드는 것 같고.”

— ⟨먼저 온 미래⟩ 281쪽

“몸은 편해지는데 영혼은 시드는 것 같고.” 오늘 이야기의 밑바닥에는 이 감각이 깔려 있습니다.

그러면 바둑 세계가 변해온 것처럼, 우리를 둘러싼 세계도 변해갈까요? 저에게도 비슷한 순간이 있었습니다. 요즘 제 취미가 ‘바이브 코딩’인데요. 매일 카톡으로 날씨 알림을 받게 해놨고, 링크를 저장하는 텔레그램 봇도 만들어 쓰고 있어요.

바이브 코딩으로 만든 날씨 봇

바이브 코딩으로 만든 텔레그램 봇

그런데 봇을 자꾸 만들다 보니 서버가 점점 많이 필요해지고,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 서버를 굴리는 데 드는 전력, 데이터센터를 식히는 엄청난 물 소모량… 내가 만드는 이 봇 하나가 누군가의 자원을 갉아먹고 있구나. 이 당혹감이 오늘 마지막 모임의 출발점이었습니다.

2. 매끄러운 화면, 거친 현실

우리는 스마트폰 터치 한 번으로 택시를 부르고, 따뜻한 밥을 받습니다. 아주 매끄러운 사용자 경험이죠. 하지만 이 매끄러움을 위해 화면 뒤의 누군가는 극도의 마찰을 겪고 있습니다.

카카오 내비가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좌회전을 지시할 때가 있습니다. 4차선 도로에서 갑자기 좌회전하라는 거예요. 하지만 기사님은 그걸 따르지 않으면 평점 테러를 당하거나 업무가 중지될 수 있어요. 알고리즘을 설계한 사람은 그 도로에 서본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사용자(승객)’의 경험만 최적화하느라, ‘노동자(기사)’의 경험은 변수에서 아예 빠져버린 거죠.

로봇의 자리

⟨로봇의 자리⟩를 쓴 전치형 교수는 이걸 “성급한 무인화의 오류”라고 부릅니다.

로봇이 작동할 수 있도록 로봇의 뒤에서 옆에서 움직이고 있는 사람은 없는 셈 치기로 한다. 그러다가 사고가 난다. 사람은 알고리즘이 알아서 짜 주었다는 동선과 일정을 따라 물건을 배달하다가 지쳐 쓰러지기도 하고, 공장에서 감독관이나 동료 없이 일하다가 로봇에 몸이 짓눌려 죽기도 한다.

— ⟨로봇의 자리⟩ 10-11쪽

알고리즘을 다시 짜라는 것은 사회를 다시 짜라는 말과 같다.

— ⟨로봇의 자리⟩ 152쪽

여기까지 이야기를 나누고, 멤버들에게 질문을 던졌습니다. “아무 생각 없이 편리하게 쓰던 서비스인데, 문득 그 뒤에 있는 사람의 존재를 느꼈던 경험이 있나요?” 그런데 대화는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렀습니다. ‘편리함 뒤에 숨겨진 사람들’이 먼 곳에 있는 누군가가 아니라 바로 자기 자신이었다는 깨달음이 터져나온 거예요.

  • (해주) “생각 없이 쓰지는 계속 않았던 것 같아요. 택배 같은 게 점점 빨라지는 게, 처음에는 좋은 부분도 있었는데 이렇게까지 필요한가 싶을 때가 많았거든요. 교보문고나 알라딘에서 주문하면 당일 배송도 되고 토요일에도 배송이 되는데, 굳이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나. 서점 가면 되지 않나.”
  • (해주) “배민 보면 캐릭터가 되게 귀엽잖아요. 걸어오시는 분들 캐릭터 보면 되게 귀엽다 생각이 들다가도, 사람이 이거 들고 오는 건데… 캐릭터를 되게 귀엽게 치워냈지만 사람의 노고가 다 있어요.”
  • (혜승) “설 전에 식품을 시켰는데 일주일을 집을 비워야 하는 상황이었어요. 지도를 보니까 동네에서 배송하고 계시더라고요. 내가 편한 것만 생각하면 가서 달라고 해도 되지만, 그 사람도 일하고 있는 사람이라는 관점에서 한 번 더 생각하게 됐어요.”
  • (혜승) “동네에 오시는 CJ 택배 기사님이 계신데, 항상 1층에서 엄청 물건을 싣고 준비를 하시거든요. 되게 바빠 보이시는 거예요. 건당 돈을 받으시니까 빨리 해야 돈을 더 많이 받는 구조인 것 같더라고요. 저희 엄마가 그 기사님을 되게 잘 챙겨주시면서 친해지셨는데, 택배가 안 오면 불만스럽잖아요. 그런 마음 때문에 이 분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여기서 대화의 물꼬가 바뀌었습니다. ‘빠른 배송’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해주 님이 재밌는 경험을 공유했어요.

  • (해주) “최근 책을 아침에 일찍 주문하면 옵션이 떠요. ‘일찍 받아볼래, 아니면 500원 쿠폰 줄 테니까 좀 늦게 받아볼래.’ 돈을 줘요.”
  • (태훈) “웃기다. 돈을 주면 빨리 갖다 주는 게 아니라, 천천히 받으려고 돈을 받는 게 신기하네요.”

그리고 게스트로 참석한 영동 님이 건축 업계의 현실을 꺼내놓으면서 분위기가 조금 달라졌습니다.

  • (영동) “저희 쪽에서도 이슈가 되고 있는 건데, 조감도 이미지 생성 이야기예요. 기존에는 컴퓨터 그래픽 전문 회사에서 3~4명이 일주일에서 열흘 투입해서 만들었거든요. 근데 요즘 AI에 넣으면 한 10분에 한 장씩 나와요. 10명이 열흘 하던 건데요. 너무 소름 돋는다는 생각이 들어요.”
  • (영동) “윗분들 임원분들은 ‘이거 그냥 너네가 AI 돌려라, 거기 안 맡기면 한 컷에 xxx만 원이 나가는데’ 이러시고. 저 정도 되는 중간 연차의 사람들은 ‘그러면 그 팀 사람들은 어떡하냐, 그리고 나는 살아남을 수 있나, 내가 하는 도면 그리는 일도 결국 대체될 수 있지 않나’ 그런 생각도 들고.”
  • (영동) “신입사원들이 오면 학교에서부터 AI 툴을 쓰니까 졸업 전시 엄청 잘하고, 매년 신입사원들의 AI 실력이 제일 좋아요. 그러면 윗선에서 ‘그럼 신입 시켜, 잘하던데’라고 하는데, 그 친구는 설계를 하려고, 디자인을 하려고 우리 팀에 들어왔는데 그냥 계속 이미지 생성만 하고 있고. 일주일 걸리던 게 하루면 되니까, 남은 6일 동안 저희가 해야 될 일에 시간이 더 늘어나는 거고, 일정이 점점 당겨지면서 저희한테도 부담이 오고.”

혜승 님은 미국 빅테크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을 더해주었습니다.

  • (혜승) “건너건너 아는 분이 메타 옆에서 일을 하시는데, 예전에는 주말 근무나 야근을 하면 HR에서 ‘우리의 문화를 해치지 말아라’라고 경고를 줬대요. 그런데 요즘에는 레이오프를 앞두고 새벽 11시까지 모든 직원들이 일을 해요. 주말에도. 대상자 안 되려고. HR 쪽에서는 이번에는 터치 안 한다고.”
  • (혜승) “인건비를 절감하는 이유가 요즘 데이터 센터 짓느라 다들 난리잖아요. 투자금이 있어야 되는데 사람을 줄여서. 사람을 줄여서 데이터 센터를 만든다는 거예요. 인간 한 명이 서버로 대체된 거네.”

회사에서의 경험도 쏟아졌습니다.

  • (민석)‘근데 AI를 쓰면 돈을 조금 들여서 아웃풋이 많이 나오게 되는 게 AI 아니야? 왜 이렇게 돈이 많이 들어?’라는 얘기가 있죠. 리더들의 생각은 그냥 그런 것 같아요. 사람을 조금 들이고 더 많은 아웃풋을 빠른 시간 안에 낸다. 이게 AI의 효능이다.”
  • (해주) “AI를 조금 살짝 맛보면, ‘빨리 만들 수 있잖아. 근데 왜 아직 안 나왔어?’ 약간 이렇게.”
  • (민석) “나와 다른, 내가 대상화로 생각했는데… 저도 지금 회사에서 하는 일이 AI 트랜스포메이션이거든요. 하면서 좋은 생각만 했죠. AI로 줄일 수 있는 기술적 장벽이 있으니까 더 많은 걸 할 수 있게 되고. 근데 영리 기업에서는 줄어든 시간만큼 그 사람을 안 쓰게 되거나 더 혹사하게 되거나 맨날 야근을 해야 되거나. 그렇게 되고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 (민석) “생각해보니까 그 뒤에 있는 사람이 나잖아. 나를 편리하게 쓰고 있지.”

모두가 ‘뒤에 있는 사람’이 자기 자신이었다. 발제를 준비할 때만 해도 우리가 잊게 되는 누군가를 찾아보자는 생각이었는데, AI가 등장하면서 그냥 그 사람이 다 우리가 되고 있다는 깨달음이었죠.

그 사람이 바로 나에요

3. AI는 추출 기계다

화면 뒤에는 사람만 있는 게 아닙니다. 물질도 있습니다.

AI는 인간을 먹고 자란다

⟨AI는 인간을 먹고 자란다⟩는 AI의 정체를 이렇게 정의합니다.

AI는 추출 기계에 가깝다. 데이터를 분류하고, 차별하며, 예측하는 모든 과정은 이를 만든 사람들의 이해 관계와 권력 구조를 반영한다.

— ⟨AI는 인간을 먹고 자란다⟩ 21쪽

거울이 아니라 추출 기계. 그러면 뭘 추출하느냐? 세 가지입니다.

사람을 먹는다 — 데이터 라벨링 노동

AI가 사람처럼 똑똑해지려면, 누군가 수작업으로 데이터를 분류해 줘야 합니다. 이 작업을 하는 사람들이 인도, 케냐, 필리핀 같은 나라에 있어요. 테슬라 자율주행을 학습시키려면 사고 영상을 사람이 직접 보면서 라벨링해야 하는데, 한 라벨러는 길에서 할아버지가 사고 나는 영상을 분류하다가 그게 자기 할아버지라는 걸 알게 됩니다. 하지만 하루 할당 건수를 채워야 하고, 규칙을 어기면 바로 대체되니까 나갈 수가 없었어요.

이곳의 노동자들은 스스로 업무 내용을 조정하거나 결정할 여지가 거의 없으며, 모든 작업은 최대한 단순하고 세분화되어 생산성과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형태로 짜여 있다. 이것이 바로 AI 혁명의 최전선에서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현실이다.

— 53쪽

지구를 먹는다 — 물질적 인프라

데이터센터

AI는 클라우드 어딘가에 둥둥 떠 있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실제로는 육중한 물리적 실체입니다. 하이퍼스케일 데이터센터 한 곳이 소비하는 전력량은 8만 가구의 전력 사용량과 맞먹고, 운영비 중 약 40%가 냉각 시스템 가동에 쓰입니다. 2018년 GPT-1의 매개변수는 1억 1,700만 개였는데, 2023년 GPT-4는 1조 7,600억 개. 약 15,000배.

구글은 19개의 해저 케이블에 직접 투자하거나 소유권을 확보했고, 메타는 초당 500테라비트를 처리하는 세계 최대 용량의 해저 케이블을 구축했습니다. 19세기에 철도 위에 전신선을 깔았듯, 지금은 해저에 광섬유를 깔고 있어요. 기술의 물질적 뿌리는 늘 같은 패턴을 반복합니다.

지식과 창작을 먹는다

AI는 물질만 먹는 게 아닙니다. 인간의 지적 자원도 먹습니다. 테크 기업의 유명한 모토 “빨리 움직여서 망가뜨려라(Move fast and break things)”는 이제 이렇게 바뀌었습니다.

“빨리 움직여서 훔쳐라.”

— 146쪽

앤트로픽의 책 학습 보도

“훔쳐라”가 비유가 아니라 문자 그대로였다는 걸 보여주는 사례가 올해 1월에 터졌습니다. 워싱턴포스트가 보도한 앤트로픽의 ‘프로젝트 파나마(Project Panama)’예요. 수천만 달러를 들여 수백만 권의 책을 사들이고, 수압 절단기로 등을 잘라내고, 고속 스캐너로 스캔한 뒤 폐기했습니다. 내부 문서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어요.

“프로젝트 파나마는 세상의 모든 책을 파괴적으로 스캔하려는 우리의 시도다. 우리가 이 작업을 하고 있다는 걸 알려지고 싶지 않다.

그 전에는 더 노골적이었습니다. 앤트로픽의 공동창업자는 해적 도서관 사이트에서 대량의 책을 직접 다운로드했고, 메타도 해적판 도서 다운로드를 CEO 저커버그에게까지 보고해서 승인받았어요. 직원이 “회사 노트북으로 불법 다운로드하는 건 좀 아닌 것 같다”고 우려를 표했지만 묵살됐고, 추적을 피하기 위해 아마존 클라우드의 임대 서버를 이용하기까지 했습니다.

참고로, 모임에서 제가 발제 자료를 만들 때 쓰고 있는 AI가 바로 앤트로픽이 만든 클로드(Claude)입니다. 이 자리에서 이걸 말하는 게 좀 아이러니했죠.

제번스 패러독스, 그리고 바이브 코딩

제번스 패러독스

여기서 짚고 넘어간 개념이 있었어요. 제번스 패러독스. 19세기에 석탄 엔진의 효율이 좋아지면 석탄을 덜 쓸 거라고 기대했지만 실제로는 더 많이 썼습니다. 효율이 좋아지니까 용도가 늘어난 거예요. 자동차 연비가 좋아지면 운전을 더 많이 하고, 에어컨 효율이 좋아지면 에어컨을 더 많이 켜듯이. AI도 마찬가지입니다. 코딩을 못하던 사람도 바이브 코딩으로 서비스를 만들 수 있게 되면, 서버 사용량은 폭발적으로 늘어나겠죠. 저 같은 사람이 봇을 10개씩 만들고 있으니까요.

이걸 알고 나서 행동이 바뀔 수 있을까? 멤버들의 반응은 솔직했습니다.

  • (민석) “저는 사용 습관이 잘 바뀌지는 않는 것 같아요. 편리함과 생산성을 포기하기가 되게 어려워지고 있고, 나 개인 한 명이 안 쓰는 노력을 하는 게 뭐가 의미가 있을까라는 생각도 사실 들고. 그런데 AI한테 이걸 물어보면 항상 ‘기술이 더 발전하면 에너지를 덜 쓰면서 할 수 있을 거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라고 해요. 제번스 패러독스 얘기는 안 하고. 한 3년째 물어보는데 모델이 그렇게 발전했는데도 계속 그렇게 대답해요.”
  • (혜승) “알고 나서도 바뀌기 쉽지 않을 것 같아요. 회사에서도 계속 ‘AI로 뭐 해봐’, ‘AI 큐앤에이를 매주 하자’ 이런 분위기니까. 자본주의 사회이고 그렇게 굴러가는 세상 속에서 ‘나는 이러저러해서 쓰고 싶지 않아’라고 얘기하는 게 쉽지가 않은 것 같고. 구조적인 게 바뀌지 않으면 개인이 뭔가 행동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아요.”
  • (미정) “AI 쓰면서 약간 괴로운 거 뭔지 알았어요. 옷도 무작위로 사들이면서 ‘내가 환경오염의 주범이다’ 이러면서 쓰는 것처럼, 토큰도 그렇게 쓰면서 죄책감을 느끼고 있다. 그냥 계속 죄책감을 느끼면서 써야 되는 게 좀 슬픈 것 같아요.
  • (태훈) “메일을 지워야 되는 걸 몰랐거든요. 진짜 몰랐어요. 탄소 소비가 된다고요? 그냥 어쩔 수 없지 않을까요? 일론 머스크가 바라는 거는 모두가 일을 안 하고 기본 소득을 받는 유토피아 같은 건데, 그게 진짜 더 행복한 게 맞나 싶은 생각도 들고.”
  • (영동) “전기를 발견해서 형광등이 켜지면 밤에도 밝게 여가를 즐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우리는 실제로 야근을 하고 있잖아요. 결국 사회적으로 합의를 해야 되는 거 아닌가. 52시간 도입까지 수십 년의 사회적 합의가 있었잖아요. 조금 더 걱정되는 거는, 데이터 라벨링 노동자처럼 실제 우리 눈에 안 보인다는 거. 옛날에 컨베이어 벨트에서 하는 거는 바로 옆에서 그런 일이 발생하니까 바로 시위도 하고 그럴 수 있는데, AI 뒤의 노동자는 완전히 숨겨져 있고 기업가들이 교묘하게 점점 더 숨기는 거잖아요.”
  • (해주) “너무 비관적으로 생각하지 않게 되는 부분도 있어요. 우리가 지식이 발달하고 기술도 발달하면서 환경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되고, 오히려 더 효과적으로 보호할 수 있는 방법도 많이 생겨났어요. 그리고 이렇게 불편함을 느끼고 괴리감을 느끼면서 잘못됐다는 걸 알고 있다는 게, 계속 얘기를 하는 게 결국 사회적 합의로 이어질 수도 있는 거니까요. 유해 콘텐츠 모니터링을 하는 비영리 단체가 원래 사람이 직접 해서 트라우마가 너무 심했는데, 멀티모달 AI 기술로 사람 대신 볼 수 있게 된 사례도 있어요. 기술을 어떻게 하면 조금 더 잘 사용할 수 있을까를 더 생각해 보면 좋을 것 같아요.”

4. 코드와 물질 사이의 영원한 진동

마지막으로, 네 번의 모임을 관통하는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1회차에서 우리는 ‘내 감각’을 봤습니다. 기다릴 수 있는 시간이 4초에서 2초로 줄었다는 이야기, 지루함을 견디지 못하면서 자기 자신을 알아갈 기회마저 잃어버리고 있다는 이야기. 그래서 “매끄러운 삶에 다시 마찰을 도입하자”고 했습니다. 오늘 본 것은 그 마찰의 다른 면입니다. 우리 쪽에서 사라진 마찰이, 화면 뒤 누군가에게는 치명적인 마찰로 전이되고 있었어요.

2회차에서는 ‘내 머릿속’을 봤습니다. 기술 기업들이 빼앗아가는 건 단순한 시간이 아니라, 집중하는 스포트라이트·되고 싶은 스타라이트·진짜 뭘 원하는지 아는 데이라이트였다는 걸 봤습니다. 오늘의 관점에서 보면, 그 알고리즘이 내 주의력을 1초 더 붙잡을 때마다 어딘가의 GPU가 돌아가고, 데이터센터가 전력을 먹고, 냉각수가 소모됩니다.

3회차에서는 ‘AI와의 관계’를 봤습니다. AI가 매끄럽게 공감해주는 그 능력의 이면에는, 수백만 권의 책을 잘라내서 스캔한 데이터가 있었습니다. 감정의 거래에도 물질적 비용이 있다는 것, 그 간극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죠.

1~3회차가 ‘코드’ 쪽을 봤다면 — 내 감각, 내 주의력, 내 관계 — 4회차는 ‘물질’ 쪽을 봤습니다. 서버, 전력, 물, 해저 케이블, 그리고 그 뒤에서 일하는 사람들. 기술은 항상 코드(소프트웨어, 알고리즘, 경험)와 물질(하드웨어, 자원, 노동) 사이를 진동합니다. 이 진동을 관찰할 수 있는 건 인간뿐입니다. 4주 동안 우리가 한 일이 바로 그거예요. 코끼리의 양쪽을 다 본 겁니다.

⟨먼저 온 미래⟩의 장강명은 이렇게 씁니다.

우리는 과학기술이 가치중립적이라는 헛소리를 경계해야 한다. 과학기술은 물질세계뿐 아니라 정신세계 깊은 곳까지 힘을 미치는 강력한 권력이다.

— ⟨먼저 온 미래⟩ 304쪽

5. 나만의 기술 사용 설명서

마지막 활동으로 “기술이라는 파도 위에서 휩쓸리지 않고 내가 지켜갈 것”을 적어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종이와 펜을 나눠드리고, 세 가지 문장을 완성하는 방식이었어요.

1. 나는 [ ]를 쓸 때, [ ]를 기억하겠다.

2. 나는 [ ]를 만들거나 기획할 때, [ ]를 확인하겠다.

3. 나는 절대 [ ] 하지 않겠다.

15분간 작성한 뒤 돌아가면서 한 명씩 낭독했습니다.

멤버들이 작성한 기술 사용 설명서

민석의 기술 사용 설명서

1번. 나는 클로드 코드를 쓸 때, 이 매끄러운 똑똑한 답변을 만들어낸 책을 쓴 작가들의 시간과 노력을 기억하겠다. 수백만 권의 책을 쓴 작가들은 얼마나 피눈물로 그 책을 썼었겠어요, AI 없는 시대에. 독립 창작자들을 좀 더 많이 만나고, 내 안에서 만들어진 창작을 더 많이 하고 싶다. AI의 먹이가 되지 않는 창작을 하고 싶다.

2번. 회사에서 AI 전환 프로그램을 만들거나 기획할 때, 내가 만드는 것이 누군가의 일을 아예 무용하게 만드는 데 기여하고 있지는 않은지, 효율과 생산성이라는 이름 하에 그들의 노력을 무시하고 있지는 않은지를 확인하겠다.

3번. 나는 절대 “이렇게 해도 바뀌는 건 없어”라고 말하지 않겠다. 무기력해지는 순간이 계속 온다고 해도 계속 불편해하고 계속 말해야겠다. 이거 시즌 2를 해야겠다. 5월에 열 것 같아요.

해주 기술 사용 설명서

1번. 클로드 코드를 쓸 때, 프로젝트 파나마나 데이터 센터나 여러 가지 그런 게 있으니까, 이전에 나 혼자서 충분히 할 수 있었던 건데 내가 AI한테 외주하려고 하는 건 아닌지 생각해 보겠다.

2번. 사업 기획할 때 미래 세대의 삶이 정말 나아지는 방향인지를 고민을 많이 해야겠다.

3번. 나는 절대 “문과라서 기술은 잘 몰라”라는 말로 외면하지 않겠다.

혜승의 기술 사용 설명서

1번. 쇼핑 앱을 쓸 때 정말 이게 필요한 건지. 너무 빨라지니까 오히려 진짜 필요한 게 아닌데도 당장 쓰고 싶다는 욕구만으로 바로 결제해버리더라고요. 그리고 AI 툴을 쓸 때도 어느 순간부터 내가 더 깊이 고민하기보다 얕게 고민하다가 바로 물어보고. 너무 의지하고 무조건적으로 동의하지는 말아야겠다.

2번. 서비스 제품을 만드는 업을 하고 있는데, 전환율이나 빠른 가입만 생각하면서 사용자한테 통제권을 너무 없애버리고 있는 건 아닌가 확인하겠다. 사용자를 무지하게 바라보고 통제권을 너무 빼앗고 있는 건 아닌지.

3번. 나는 절대 빠르고 편리한 것만이 의미 있다고 생각하지 않겠다. 통제권이란 사용자가 정보를 수용하고 본인의 의지로 뭔가를 할 수 있다는 뜻이고, 거기에는 조금의 불편함이나 시간이 들어간다.

태훈의 기술 사용 설명서

1번. 유튜브를 쓸 때 진짜 내가 원하는 것을 기억하겠다. 1회차 때 생각이 많이 나고, 그때가 되게 영감을 많이 줬던 것 같고.

2번. 나는 ERP를 만들거나 기획할 때, 업무가 없어지는 사람의 대체 업무를 확인하겠다.

3번. 그냥 편승하지는 않겠다. 쓰더라도, 알고 써야겠다.

영동의 기술 사용 설명서

1번. 나는 AI가 건축 이미지를 생성할 때, 기반이 되는 건축 거장의 작품과 의도를 기억하겠다. 유명한 거장들 이름을 누르면 그 사람 스타일을 만들어주고, 프랭크 게리 스타일을 베끼면 너무 쉬운 시대가 됐는데, 그 스타일을 만들어냈던 의도들이 있을 거잖아요. 스타일을 베끼더라도 의도만큼은 한번 검색해보고 “이건 왜였구나”는 해야겠다.

2번. 텍스트를 가져다 쓸 때 요약 속에서 사라져버린 맥락을 확인해야 한다. 제안서 같은 거 쓰면 마지막에 거창하고 있어 보이는 텍스트들, 예전에는 열심히 썼었는데 요즘은 가져다 쓰면 솔직히 너무 편하더라고요. 대신에 텍스트들의 맥락은 한번씩 확인해보고 스스로 팩트체크하는 개념으로 해봐야겠다.

6. 4주간의 항해를 마치며

⟨먼저 온 미래⟩의 마지막 문장을 읽으며 모임을 마무리했습니다.

내 생각에는 인공지능이 아직 할 수 없고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은 따로 있다. 좋은 상상을 하는 것, 우리가 미래를 바꿀 수 있다고 믿는 것, 그렇게 미래를 바꾸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 운명의 주인이다. 우리는 우리 영혼의 선장이다. 아직까지는.

— ⟨먼저 온 미래⟩ 340쪽

“아직까지는.” 이 세 글자가 핵심입니다. 지금 이 자리에서 선언문을 쓸 수 있는 것도, 불편한 질문을 던질 수 있는 것도, 기술의 실체를 똑바로 바라보려 하는 것도 — 우리가 아직 운명의 주인이기 때문입니다.

4주 동안 이상하고 쓸모없어 보이는 질문들에 기꺼이 동참해 주시고, 기꺼이 불편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알반클 공식 모임은 여기서 끝나지만, 여러분의 일상에서 우리가 함께 나눈 질문들이 의미있게 자리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