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치산 단독 공연을 다녀와서 After the Kkachisan Solo Concert
지난주 토요일 밴드 까치산의 단독 공연에 다녀왔다. 작년 부산락페스티벌에서 본 뒤로 단독 공연을 꼭 가보고 싶었는데, 인기가 너무 많아서(?) 계속 예매에 실패하다가 솜솜님 용병 찬스로 겨우 겨우 공연에 갈 수 있게 되었다. 공연장은 합정에 있는 무신사 개러지. 작은 스탠딩 클럽 공연장이었다. 작은 공연장이고 대부분 여성 관객이 많아서 뒤에서 봐도 잘 보였다.
공연을 재밌게 보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밴드를 가장 열심히 좋아했던 건 중학생때와 고등학생 때인데, 그 때 좋아하던 밴드들의 음악과 까치산의 음악은 얼마나 다른가! 싶었던 것. 그리고 그것은 나의 마음 상태를 보여주는 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온통 내 인생이 모호하고 슬펐던 청소년 시절을 지나, 삼십대를 통과해나가고 있는 내가 좋아하는 음악이 ‘사랑’을 얘기하는 밴드라니. 정말 행복한 일이잖아? 나 좀 잘살았잖아? 그리고 참 행운이잖아?
사실 몇 년 전에는 넬의 김종완이 걱정될 때가 많았다. 그는 공연을 할 때마다 삶이 얼마 남지 않은 사람처럼 초연하게 얘기했고, 그것은 넬의 음악에도 자연스럽게 드러났다. 51분 뒤에 죽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썼다는 ‘51분전’이나, 제목만으로 의미심장한 ‘안녕히계세요’ 같은 곡들 뿐만 아니라 정말 많은 곡들에 죽음에 대한 뉘앙스가 짙게 서려있었다. 그리고 어쩌면 나의 슬프고 모호했던 청소년 시절을 버틸 수 있게 해준 게 넬의 음악이었는지도 모른다. 그 때 내가 까치산 음악을 좋아할 수 있었을까? 없었을 것 같다. 나만 온통 괴롭고, 나에게만 힘든 일이 일어나고 있다고 생각했던 청소년 시절 나에게 넬의 음악은 너만 그런게 아니라고 나도 죽기보다 삶이 싫다고 함께 곁에 있어주는 곡이었다. 그러니까, 힘든 시기를 지날 때 더 필요한 건 ‘잘 살고 있는 누군가’를 보는 게 아니라, 나와 함께 절벽에 서서 불안을 함께해주는 누군가일 수 있는 거니까.
내가 학창시절 좋아했던 밴드 넬, 메이트의 음악과 까치산의 음악이 정말 많이 다르잖아? 그리고 이건 나의 마음 상태를 보여주는 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모호하고 슬프고 감성적이었던 학창시절을 지나 어엿한 삼십대가 된 지금은 ‘주제는 사랑’이라고 노래하며, ‘우리가 가진 슬픔을 반으로 갈라 나누자. 그 누가 멈추거나 숨을 필요 없게’라고 노래하는 밴드를 좋아하게 되었다는 것이, 나에겐 조금 행운인 일 같다고도 생각했다. 그리고 넬의 ‘Act 5’를 듣던 중학생이 자라서 ‘원수는 뭐, 이쯤 잊도록 하고요.’ 라고 노래하는 밴드를 좋아한다는 것. 그냥 내가 너무 기특하게 느껴졌다. 죽지 않고 살아서, 여기까지 와서, 다행이라고. 그리고 그것은 어쩌면 나의 모든 우울과 불행을 넬의 음악이 대신해주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매년 나는 넬의 보컬 김종완이 걱정되었다. 그는 공연을 할 때마다, 삶이 얼마 남지 않은 것처럼 이야기했고, 그건 곡에도 자주 드러났다. 51분 뒤에 죽을 것 같다는 마음이 들어서 썼다는 ‘51분전’이나, 제목만으로 의미가 느껴지는 ‘안녕히계세요’같은 곡은 말할 것도 없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그가 말하는 우울이나 슬픔이 다르게 느껴졌다. 자신 안에 단단함을 가진채 자신의 표현을 해내는 것 같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