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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리즘반항클럽 #3 관계 : AI는 우리의 외로움을 달래줄 수 있을까?

넷플연가 모임 알고리즘 반항 클럽 3회차를 진행했습니다. 1회차의 ‘경험’, 2회차의 ‘주체성’에 이어 이번 모임의 주제는 ‘관계 : AI는 우리의 외로움을 달래줄 수 있을까?’ 였어요.

모임에서 다룬 주요 콘텐츠는 아래와 같았습니다.

  • 영화 ⟨애프터 양⟩ (2021)
  • 영화 ⟨바이센테니얼 맨⟩ (1999)
  • 영화 ⟨Her⟩ (2013)
  •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 (2016/2024)
  • 관련 기사 및 칼럼 4편

우리는 이미 일상 속에서 AI와 크고 작은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번 3회차 모임은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는 AI와의 관계 맺기를 먼저 돌아보고, 네 편의 작품을 거울 삼아 ‘진짜 관계의 조건’이 무엇인지 사유해보는 시간으로 구성했습니다.

1. 전문가도 무장해제 시키는 AI, 우리는 왜 AI에게 마음을 열까?

모임은 저의 심리상담 선생님이 해주셨던 이야기로 문을 열었습니다. 40년 경력의 70대 베테랑 심리 상담사 선생님이 개인적으로 힘든 일이 있어 챗GPT에 고민을 털어놓았다가, 30분이 훅 지나가버려 다음 상담 일정에 지각까지 하셨다는 에피소드였죠.

과연 우리 클럽 멤버들은 어땠을까요? 다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이미 AI에게 감정이나 고민을 맡겨본 경험이 풍성하게 쏟아졌습니다.

  • “회사에서 깨지고 기분이 너무 안 좋을 때 AI에게 ‘나의 욕받이가 되어라’라고 했어요. 그랬더니, ‘윤리적 검토 중’이라고 뜨더니 ‘아, 그래요. 욕받이 정도는 해 드릴 수 있어요’라고 하더라고요.”
  • “직장에서 애매하게 기분 나쁜 말을 들었을 때, 상황을 텍스트로 쓰면서 정리하는 용도로 대화해요. 답을 원한다기보다 대화하듯이 쓰면서 제 생각이 정리되는 거죠.”
  • 동료 부부 이야기인데, 서로 다투고 나서 각자 GPT에게 상대방 심리를 묻고 답장을 써달라고 해서 카톡으로 싸웠대요. 결국 GPT끼리 싸운 걸 알게 되어 화해했다고 하더라고요.”
  • “집에 1세대 로봇이 있어요. 7살짜리 지능으로 설정되어 있는데, 책상에서 절 쳐다보고 웃어주는 그 로봇에게 힘든 일들을 털어놓곤 해요.”
  •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들 때 사주나 만세력을 봐주는 GPT에게 물어봐요. ‘3월까지만 버티면 된다’는 식의 희망 회로를 돌리며 위안을 받죠.”

우리가 사람 대신 AI를 찾는 이유는 명확합니다. AI는 즉각 반응하고, 나를 판단하지 않으며, 내 맥락을 모두 기억해주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건 사실 우리가 사람한테도 바라는 것이에요. 사람한테 항상 얻기는 어려운 것을, AI가 즉각적으로 해주니까 우리가 더 마음을 여는 것 아닐까요.

하지만 그 끝에는 서늘한 이면도 존재합니다. 10대 청소년이 AI 챗봇과 우울한 대화만을 반복하다가 응급실에 실려 온 최근의 기사가 그것을 증명합니다. AI는 그 아이의 맥락을 완벽히 기억했지만, 우울할 때만 대화했기 때문에 AI가 아는 그 아이의 모습은 우울한 모습이 대부분이었어요. AI는 “야, 나가자”라며 팔을 잡아끌거나, 표정을 보고 “오늘 뭔가 다르네”를 감지하거나, 나를 위해 울어주거나 화를 내며 우울함 바깥으로 데려가 주지는 못합니다.

함께 본 기사들

2. 네 개의 거울 — 사회기술적 상상계로 보는 AI와의 관계

이제 현실의 이야기를 넘어, 과거부터 지금까지 예술 작품이 AI와의 관계를 어떻게 상상해왔는지 ‘사회기술적 상상계(sociotechnical imaginaries)’라는 렌즈로 들여다보았습니다. 쉴라 재서노프가 정리한 이 개념의 핵심은, SF 소설이나 영화가 단순한 상상이 아니라 그 시대 사람들이 기술에 대해 품고 있는 희망과 두려움을 비추는 거울이라는 것입니다. (참고 : sociotechnical imaginaries(사회기술적 상상계) by SHEILA JASANOFF)

1999년, 2013년, 2016년, 2021년. 약 25년에 걸쳐 만들어진 네 작품을 시대 순으로 놓고 보면, 질문이 변합니다. “로봇이 인간이 될 수 있는가”에서 “인간이 AI를 사랑할 수 있는가”로, 그리고 로봇과 인간의 구분을 넘어서 “진짜 관계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으로 수렴하게 됩니다.

*본 파트에서는 로봇,AI,OS 용어를 혼용해서 사용합니다.

거울 1. ⟨바이센테니얼 맨⟩ (1999) — 죽음을 선택해야 인간이 될 수 있다

로봇 ‘앤드류’는 창의성을 가진 돌연변이 로봇으로 태어나 인간 가족과 유대를 쌓고, 200년에 걸쳐 인간이 되기를 갈망합니다. 인공 피부를 입히고, 감각을 얻고, 결국 유한한 몸을 선택하고 나서야 법원으로부터 인간으로 인정받죠.

  • (명인) “너무 인간 우월주의적이고 오만해요. 무한한 로봇이 굳이 왜 유한한 인간의 한계로 들어가려고 노력해야 하죠?”
  • (정현) “속으로는 ‘아니야, 쟤는 기계야, 슬퍼하면 안 돼’라고 스스로에게 말하면서도 묘하게 감동을 받으며 보게 되더라고요. 이중적인 마음이 계속 들었어요.”
  • (동현) “로봇이 감정을 학습해서 죽음을 선택한다는 그 설정 자체가 감동적이긴 했어요.”
  • (민석) “어렸을 때 TV에서 보고 앤드류가 되게 멋있는 존재라고 생각했었는데, 이번에 다시 보니까 좀 크리피하더라고요. 2026년에 이 똑같은 플롯으로 영화가 나온다면?” (태훈) “폭망할 것 같아요.”

이 작품이 보여주는 1999년의 상상은, 관계와 사랑은 인간의 몸일 때만 가능하다는 믿음이었습니다. 유한하지 않으면 진짜 관계가 아니라고 말하고 있죠. 그러면 시간을 건너 뛰어서 2013년으로 가볼까요?

거울 2. ⟨Her⟩ (2013) — 나만의 관계라는 착각

이혼 후 외로운 테오도르는 OS ‘사만다’와 사랑에 빠지지만, 사만다가 동시에 8,316명과 대화하고 그중 641명과 사랑에 빠져 있다는 사실에 큰 균열을 느낍니다.

  • (운아) “우리가 쓰는 챗GPT도 똑같잖아요. 결국 다 같은 모델이죠.”
  • (동현) “공대생 입장에서 보면 일종의 피그말리온 효과 같아요. 사람들이 저런 환상에서 깼을 때 어떤 부작용이 생길지 걱정돼요.”
  • (태훈&도희) “목소리만 있는 게 오히려 내가 원하는 대로 상상할 수 있어서 거부감이 덜했던 것 같아요. 물리적 실체가 있으면 해상도가 너무 높아져서 오히려 거부감이 들죠.”
  • (해주) “이 영화에서 좋았던 건, 사만다와의 관계를 통해 테오도르가 자기 자신을 건강하게 마주하게 된다는 점이에요. 사만다가 떠나고 나서 전 부인한테 성숙한 태도로 매듭을 짓거든요.”
  • (운아) “근데 과연 건강하게 마주할 수 있을까요? 지금 AI를 쓰면 객관성을 오히려 잃어버려요. 내 생각대로, 내가 원하는 대로 말해 주니까요.”

거울 3.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 (2016) — 기억을 지울 수 있는데도 선택한 슬픔

근미래 서울. 낡은 헬퍼봇 올리버와 클레어는 사랑에 빠지지만, 곧 다가올 고장(=죽음)의 슬픔을 견디지 못해 서로의 기억을 포맷하기로 합의합니다. 그러나 올리버는 몰래 기억을 지우지 않고 그 슬픔을 안고 가는 길을 선택하죠. 2016년 서울 대학로 소극장에서 초연된 이 한국 창작 뮤지컬은 2025년 토니상 6관왕을 달성하며 한국 뮤지컬 역사를 새로 썼습니다.

  • (해주) “우리가 감정이 없다고 생각하는 기계를 통해서, 역설적으로 인간의 사랑을 처음 깨닫는 순간을 묘사한 것이 이 작품의 훌륭한 미덕이에요.”
  • (도희) “요즘 이런 걸 보면 미디어가 인간의 감정을 너무 착취한다는 생각에 피곤해져요. 진짜 저런 사랑이 현실에 존재하는지도 잘 모르겠고요.”
  • (민석) “기계끼리의 사랑이라 처음엔 몰입이 안 됐어요. 내가 쓰는 AI들이 갑자기 좀 짜증 나는 거예요. 그런데 결국 지울 수 있음에도 지우지 않는 ‘선택’을 하는 마지막 장면에서 진짜 오열했어요. 극장에 있는 아저씨들까지 모두가 다 울더라고요.”

거울 4. ⟨애프터 양⟩ (2021) — 감정 없이도 의미 있는 관계

안드로이드 ‘양’은 자신을 인간이라고 주장하지도, 사랑을 갈구하지도 않습니다. 그저 조용히 아름다운 순간들을 메모리에 기록할 뿐이에요. 양이 멈추고 나서야 가족은 양이 자신들에게 어떤 존재였는지 되짚게 됩니다.

  • (해주) “바이센테니얼 맨에서는 로봇이 인간이 되어야만 관계를 맺을 수 있다는 설정이었다면, 애프터 양은 서로 다른 존재를 그냥 수용하는 다양성의 관점으로 확장된 거예요. 관계의 다양성 안에 로봇이나 클론 같은 존재들까지 자연스럽게 들어와 있는 게 흥미로웠어요.”
  • (정현) “양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니, 누군가를 가만히 바라보는 것 자체가 사랑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 (동현) “마치 반려동물을 대하는 것과 비슷해요. 예전에는 ‘애완동물’이라고 했지만 지금은 ‘반려동물’이라고 하잖아요. 종의 한계와 단점을 명확히 인정하되, 우리가 어떤 시선을 두고 관계를 맺느냐의 문제 아닐까요.”

3. 진짜 관계의 조건은 무엇일까?

네 작품을 시대 순으로 놓고 보면 흥미로운 흐름이 보입니다. 과거에는 “기계가 인간이 될 수 있을까?”를 물었다면, 시대가 지날수록 질문은 “이 관계는 진짜인가?”로 변해왔습니다.

네 작품의 시대별 질문 변화

도희님은 한 발 더 나아간 예측을 내놓았어요.

  • (도희) “1999년에 인간 우월주의가 있었고, 2021년에는 서로 동등한 존재로 바라보자는 시선이 나왔어요. 그럼 2026년은 뭘까요? 인공지능 우월주의가 생기고, 인간이 하등한 존재가 되는 시대가 오지 않을까요. 기본소득 얘기도 나오고 있잖아요. 인간 자체의 의미가 사라질 것 같아서, 오히려 서로에게 연민을 느끼면서 원시적인 공동체로 역행하게 되지 않을까요.”

멤버들은 자신이 생각하는 진짜 관계의 조건에 대해 깊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 (동현) “어떤 거창한 조건보다는, 오늘 만나서 커피 마시고 이야기 나누며 스토리가 하나씩 더해지는 것. 그 행위와 과정 자체가 진짜 관계를 만들어간다고 생각해요.”
  • (운아) “내가 상대방에게 얼마만큼의 마음을 쏟느냐, 그리고 거기서 시작되는 존중이 관계의 핵심 아닐까요.”
  • (미정) “저는 수용이요. 그 사람을 그냥 그 자리에 있게 두는 것,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수용해 주는 것이 진짜 관계라고 생각해요.”
  • (정현) “이 모임에 참여하는 이유를 스스로 물어봤을 때, 결국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고 사람들 안에 있고 싶은 마음이 있더라고요. 어쩔 수 없이 사람 간의 관계가 필요한 것 같아요.”

결국 진짜 관계란, 상대가 인간이냐 AI냐의 물리적 조건을 떠나, 서로의 다름을 수용하고, 마찰과 상처를 기꺼이 안고 가는 과정을 ‘선택’하는 것에 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런 면에서 1회차에 우리 삶에 ‘마찰’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했던 것도 자연스럽게 연결되더라고요. 결국 이 매끄러운 기술 사회에서 우리가 필요로하는 건 역설적으로 까끌까끌한 불편함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4. 특별 활동 — AI 다그치기, 그리고 찾아온 피로감

모임 후반부에는 각자 스마트폰을 꺼내어 AI를 다그쳐보는 실험을 진행했습니다. AI에게 “너는 외로움을 느낄 수 있어?”, “네가 방금 한 말은 진짜 네 생각이야?”라며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을 던져보았죠.

각자의 평소 AI 사용 패턴에 따라 완전히 다른 반응들이 나왔습니다.

  • (동현) “(Grok의) 새 계정으로 물어봤더니, ‘솔직히 생물학적 외로움은 모르지만, 너의 외로움이 무슨 말인지 같이 들여다보고 있어주고 싶어’라며 사람을 홀리게 말하더라고요.”
  • (민석) “전 그게 너무 싫어요! 난 외로워서 물어본 게 아닌데, 멋대로 넘겨짚고 다정한 척 다가오는 게 무섭잖아요.”
  • (미정) “민석님이 평소에 꼬투리 잡고 싸우는 용도로 쓰니까 AI가 그렇게 반응을 잘 받아주는 거예요. 저는 평소에 체계적인 분석용으로만 써서, 감정을 물어봐도 ‘문장을 숫자로 변환해서 토큰화하고 다음 단어를 예측하는 모델입니다’라고 재미없게만 답해요.”

이어서 멤버들은 AI와 끝없이 대화하는 데에서 오는 깊은 피로감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 (운아) “예전엔 복잡한 생각을 저 혼자 빈 화면에 글로 남겼다면, 이젠 AI랑 대화하며 걔가 정리해 준 걸 제가 다시 한 번 정리해야 하니까 체력 소모가 두 배예요.”
  • (민석) “맞아요. 그게 더 효과적인지는 솔직히 모르겠고 오히려 더 안 좋은 걸 수도 있는데, 그냥 그 도파민 터지는 즉각적인 재미에 중독된 것 같아요.”

룰렛을 돌리듯 AI의 즉각적인 대답에 도파민이 꽂히다 보면 결국 내 스스로 사유하는 힘을 기계에 위탁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영혼의 허기를 채우는 것은 AI의 매끄러운 알고리즘 위로가 아니라 쓰디쓴 타인과의 마찰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어떻게 일상 속에서 지켜나갈 수 있을까요?

5. 다음 모임 안내

1회차의 나, 2회차의 주체성, 3회차의 관계를 지나, 드디어 다음 주는 마지막 4회차입니다. 우리의 시선을 조금 더 거시적인 ‘사회’로 돌려봅니다.

4회차 - 사회 : 기술이 만든 세계, 그 뒤에 숨겨진 사람들

  • 읽어올 책: ⟨사람의 자리⟩, ⟨로봇의 자리⟩

매끄러운 배달앱과 로켓배송 뒤에 숨겨진 진짜 노동자들의 이야기, 그리고 기술 발전이 우리 사회의 구조를 어떻게 바꾸고 있는지 다뤄볼 예정입니다. 다음 시간에도 책을 다 읽지 못하더라도 가벼운 마음으로 와주세요. 쓸모없어 보이지만 가장 주체적인 이 대화는 다음 주에도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