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리어 별자리 — 사다리도 정글짐도 아닌, 나만의 모양
셰릴 샌드버그가 ⟨린 인⟩에서 ‘커리어 래더(Career Ladder)’를 버리고 ‘커리어 정글짐(Career Jungle Gym)’을 이야기한 이후, 커리어를 수직 사다리가 아닌 입체적 구조물로 바라보는 시각은 꽤 널리 퍼졌다. 사다리는 한 방향만 있다. 올라가거나, 떨어지거나. 정글짐은 다르다. 옆으로도 가고, 대각선으로도 가고, 때로는 내려가기도 하면서 결국 어딘가에 도달한다.
그런데 나는 정글짐이라는 비유도 어딘가 좀 답답했다.
정글짐은 결국 누군가가 미리 만들어 놓은 구조물이다. 봉이 있고, 연결부가 있고, 올라갈 수 있는 경로가 정해져 있다. 옆으로 갈 수 있다는 게 사다리보다는 낫지만, 여전히 “어딘가에 매달려야 한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사다리든 정글짐이든 결국 구조물 위에 있는 사람의 이야기다. 구조물 밖으로 나가면? 떨어진 거다.
나는 떨어진 적이 있다. 5년을 다닌 첫 회사에서 나왔을 때, 사다리에서 떨어진 것도 정글짐에서 미끄러진 것도 아니었다. 따뜻하다고 믿었던 울타리가 무너지고, 그 틈으로 저벅저벅 걸어나온 거였다. 그 후 두 번째 회사로 옮기면서 지금의 자리에 왔다.
돌아보면 이 과정은 어떤 구조물 위에서의 이동이라기보다, 밤하늘에 별을 하나씩 찍어가는 일에 가까웠다.
별자리는 별을 이어야 보인다
2019년에 ‘내 자리의 모양을 찾아서’라는 글을 처음 쓰기 시작했다. 신입사원이었던 내가 지금까지 어떤 시간들을 지나왔는지 정리하고 싶었다. “꿈이 곧 직업이고, 직업이 곧 일일까?”라는 질문에서 출발한 그 글은 7년 동안 이어졌고, 2025년 여름에 에필로그를 쓰며 마무리했다.
그 사이에 내가 졸업한 건국대학교 강연 동아리 레뮤제(Le Musée)에서 같은 제목으로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2021년이었다. 내가 걸어온 길을 설명하면서 이런 말을 했다.
“내 자리의 모양은 기존의 어떤 틀에 끼워맞춘 모양이 아니라, 그냥 ‘김민석 별자리’ 같은 것이다.”
그때는 그냥 적절한 비유라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비유 이상이었다. 별자리는 실제로 내 커리어를 설명하는 데 가장 정확한 구조였다.
별자리를 생각해보자. 하늘에 별이 흩어져 있다. 별 하나하나는 그 자체로는 그냥 점이다. 그런데 누군가 “이 별과 저 별 사이에 선을 그어보면 어때?”라고 하면, 갑자기 모양이 보이기 시작한다. 사자도 되고, 전갈도 되고, 물고기도 된다. 같은 별을 보고 서양에서는 오리온을 보았고, 한국에서는 삼태성을 보았다. 별 자체는 바뀌지 않았는데, 어떤 선을 긋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이야기가 된다.
커리어도 마찬가지다. 무언가를 만들고 싶었던 순간, 따뜻한 팀을 만났던 시간, 처음으로 무언가를 그만둬본 경험, 누군가가 건넨 한마디. 이것들은 제각각 흩어진 별이다. 사다리 위에 놓으면 “올라갔다가 떨어졌다”가 되고, 정글짐 위에 놓으면 “옆으로 갔다가 대각선으로 갔다”가 되지만, 별자리로 놓으면 — 그저 나만의 모양이 된다.
그래서 이름을 붙여봤다. 커리어 별자리(Career Constellation).
사다리, 정글짐, 별자리
셋의 차이를 정리하면 이렇다.
사다리는 수직이다. 위로 올라가는 게 성공이고, 내려가는 건 실패다. 직급, 연봉, 타이틀. 위아래만 존재하는 세계.
정글짐은 3차원이다. 옆으로도, 대각선으로도 움직일 수 있다. 직무 전환, 부서 이동, 이직. 사다리보다 훨씬 현실적이지만, 여전히 구조물 안에서의 이동이다. 봉을 잡고 있어야 하고, 연결 경로가 존재해야 한다.
별자리는 평면이 아니다. 별은 각각 다른 시간에, 다른 맥락에서 생겨난다. 별 사이의 거리도 제각각이고, 연결선도 내가 긋는다. 구조물이 미리 존재하지 않는다. 별이 먼저 있고, 선은 나중에 그어진다.
이 차이가 중요한 이유는 “이야기의 주도권”이 어디에 있느냐가 다르기 때문이다. 사다리에서 주도권은 사다리 자체에 있다. 칸이 정해져 있으니까. 정글짐에서 주도권은 절반쯤 나에게 있다. 어느 봉을 잡을지는 내가 고르지만, 봉의 위치는 정해져 있다. 별자리에서 주도권은 온전히 나에게 있다. 어떤 경험을 별로 삼을지, 어떤 별끼리 이을지, 그래서 어떤 모양이 되는지. 전부 내가 정한다.
“커리어가 꼬였다”는 말이 있다. 사다리에서는 맞는 말이다. 옆으로 가면 꼬인 거니까. 정글짐에서는 좀 덜 꼬였다고 말해줄 수 있다. 옆으로 간 것도 이동이니까. 그런데 별자리에서는 꼬인다는 개념 자체가 없다. 별이 어디에 있든 선을 이으면 모양이 되니까.
그래서 별자리를 만들어봤다
개념만 말하면 공허하다. 그래서 직접 만들어보기로 했다. 내 블로그 안에, 누구나 자기만의 커리어 별자리를 그릴 수 있는 인터랙티브 웹 페이지를.
byminseok.com/lab/constellation/
구조는 이렇다. 네 가지 테마가 있다.
무언가를 만드는 사람 — 뭘 하고 싶었고, 어디로 가고 싶었는지. 직업이 아니어도 괜찮다. 가슴 뛰었던 방향이면 된다.
울타리에서 돗자리로 — 실제로 어디에 머물렀는지. 회사든, 동아리든, 도시든. 그 시간은 다 별자리의 일부다.
다시 자라니까 — 넘어진 적이 있는지. 넘어진 적 없는 사람은 없다. 그것도 별이 된다.
누군가의 한마디 — 누가 힘이 되었는지. 말 한마디가 방향을 바꿔놓기도 하니까.
각 테마에서 미리 준비된 선택지를 고르거나, 자기만의 문장을 적을 수 있다. 별이 하나씩 캔버스에 생기고, 같은 테마의 별끼리 선으로 이어지고, 테마 사이에도 점선 다리가 놓인다. 전부 완성하면 별들이 캔버스 중앙으로 모여들면서 반짝인다. “망한 게 아니야, 이게 네 모양이야.”라는 문장과 함께.
완성된 별자리는 URL로 공유할 수 있다. 친구에게 보내면 그 친구의 브라우저에서 나의 별자리가 밤하늘 위에 펼쳐진다. 테마별 범례를 클릭하면 해당 테마의 별과 선만 밝게 빛나고 나머지는 어두워진다. 별 위에 마우스를 올리면 그 별에 담긴 이야기가 나타난다.
밤하늘 배경에 별이 반짝이고, 마우스를 가져다 대면 별이 피하거나 끌려오고, 드래그하면 위치를 옮길 수 있다. 물리 시뮬레이션이 돌아가고 있어서 별들이 살짝 떨리면서 살아있는 느낌을 준다. Canvas API와 바닐라 JS만으로 만들었는데, 프레임워크 없이도 이 정도 인터랙션이 가능하다는 게 직접 만들면서도 신기했다.
나의 별자리도 미리 만들어 두었다. 민석의 별자리 페이지에 가면, 내가 지난 7년간 ‘내 자리의 모양을 찾아서’ 시리즈에서 써왔던 이야기들이 별로 떠 있다. 구석에는 4년 전 레뮤제 강연 영상이 밤하늘의 광고판처럼 작게 재생되고 있다.
꼬불꼬불해도, 빈 곳이 있어도
이 프로젝트를 만들면서 한 가지 확실해진 게 있다. 커리어를 설명하는 비유가 바뀌면, 자기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도 바뀐다는 것.
사다리 위에 서 있다고 생각하면, 옆으로 간 경험은 쓸모없는 우회가 된다. 정글짐 위에 있다고 생각하면, 그래도 좀 낫지만, 봉에서 손을 놓은 시간은 공백이 된다. 하지만 별자리를 그리고 있다고 생각하면, 우회도 공백도 없다. 별이 없는 영역이 있을 뿐이고, 그 빈 곳은 앞으로 채워질 자리다.
이전에 한 스타트업 대표와 커리어 상담을 할 때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5년이나 한 회사를 다녔으면 관성적인 사람 아닌가요?” 그 말에 억울해서 긴 글을 쓴 적도 있다. 그런데 별자리의 관점에서 보면, 한 자리에 오래 머무른 것은 그 영역에 별이 밀집해 있다는 뜻이다. 별자리 중에서 가장 밝은 부분. 그게 관성인지 집중인지는 본인만 안다. 그리고 본인이 선을 그어보면 보인다.
에필로그에서 이렇게 썼다. “내 자리의 모양은 계속 변화할 것이고, 그래도 괜찮다.” 별자리도 마찬가지다. 별은 계속 추가되고, 선은 다시 그어지고, 모양은 변한다. 어제의 별자리와 내일의 별자리는 다를 수 있다. 하지만 어떤 모양이든 그건 나의 별자리다.
꼬불꼬불해도, 빈 곳이 있어도 — 그게 네 별자리야.
직접 만들어보고 싶다면, 여기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