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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시작하기 전에 돌아보는 2020년

8월까지는, 그래 시간이 빠르네 싶었다. 그런데 9월이라니? 다이어리 회사에서는 9월 즈음부터 2021년 캘린더와 다이어리를 판다. 왜냐면 9월은 4/4분기를 코앞에 둔 달이고, 이제는 다음 분기가 내년이니까. 다음을 계획하고 준비해야 하는 시기이니 그런 거 아닐까. 우리 회사 성과 연도 기준으로는 3/4분기를 시작한 셈이니 벌써 절반 정도가 흘렀다. 요즘 자꾸만 힘은 없는데 새로운 계획들은 떠오르고.. 복잡한 마음을 계획으로 구체화하기 위해선 잠깐이라도 2020년을 돌아봐야겠다 싶었다.

​영화 <기생충>의 다송이 생일파티 장면이 if 2020 was a movie scene이라고 하는 트윗을 봤다. 영화에서 그 이후 일어나는 일을 생각하면, 참 적절하다 싶다. 2020년이 시작되기 전, 트위터 progress bar 201x 계정은 어떻게 되는 거냐는 둥, 2020년 2월 2일은 다시 오려면 n 년이 걸릴 대칭의 날(20200202)이니 뭐라도 해야 한다는 둥. 이런저런 말들이 돌았다. 지금 생각하니 참 귀여운 생각들이다. 2020년이 팬데믹에 휩쓸린 채로 취소와 연기가 일상이 되고, 세상의 온갖 약한 지반이 무너지고, 이기적인 사람들의 모습에 끝없이 인류애를 잃어가는 해가 될 거라는 걸 그때는 꿈에도 몰랐으니까.

2020년 1월을 시작하는 마음은 어땠나. 12월부터 이어진 피로에 짓눌려 인생 탈출 선언하기 직전, 많은 기회들이 찾아왔다. 범서파 연례행사 말많들(말씀 많이 들었습니다)에 진아님이 초대해 주셔서 감사히 참석해 많은 야망 있는 여자들을 만났다. 아프유 코티처로 참여해달라는 요청이 들어왔고, 팥쥐라는 별명을 만들어준 HCI Korea 학회에 참석할 수 있게 되었다.(코로나로 인해 연기되었고, 결국 가지 못했지만)

​2월에는 빌라선샤인에서 월급날엔 월말정산 소셜 클럽을 시작했다. 여전히 나의 일, 나의 자리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스크럼으로 소프트웨어 관리하기>를 읽었고, 하고 싶은 것을 제안해서 '일단 한번 해봐'라는 답을 듣고 의욕 뿜뿜했던 시기. 다노에 비건 지향 수강생 인식에 대한 클레임을 걸었고, 여기저기 염증으로 몸이 아팠다. 코로나의 영향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학회가 취소되고, 마스크 없이 병원에 갔다가 입장 거부를 당하더니, 결국 2월 마지막 주 회사에서 특별 휴무가 나왔다. 의욕이 뿜뿜하던 시기가 맥없이 끊겨서 아쉬웠다.

​3월에는 6개월간 담당한 서비스를 오픈했다. 센터에 사전 오픈하는 건데도, 공지글 하나를 쓰는 게 무지 떨렸다. 코로나가 기승을 부리기 시작하던 때라, 바뀐 모든 환경이 새로웠다. 염치없게도 나의 생계엔 팬데믹의 부정적 영향이 전혀 없었고 zoom으로 이것저것 가상 배경을 바꿔가며 it업계 친구들이랑 일요일 밤마다 수다를 떠는 것이나, 노션 워크샵을 zoom으로 진행해보는 것 모두가 새롭고 재밌기만 했다. 내 안에 따뜻함이 많이 있던 시기였고, 그 따뜻함을 주변에 많이 나누고 싶었다.

​4월에는 친구와 호캉스를 가서 1/4분기 회고를 했다. 비즈니스 라운지를 2시간 빌려서 각자 회고를 하고 나누고, 다음 분기 계획을 같이 세웠다. 회고를 마치고선 여기저기서 와인을 잔뜩 마시고 취했다. 다음 날엔 잠수교 러닝을 했고, 나에게 이젠 불행을 행복으로 다시 바꿀 힘이 있다는 걸 깨달았다. 행복한 순간에 실체 모를 불안을 섞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5월에는 전사 컨퍼런스에서 짧게 서비스를 소개하는 발표를 했다. 강연 동아리 출신답게(?) 발표를 정말 많이 해봤지만, 온라인으로 진행하는 이 발표만큼 시작 전에 떨린 적이 없었다. 내가 잘 알고 말하는 건가, 하는 불안감도 있었던 것 같고. 영상으로 많은 사람들이 보게 된다고 생각하니 떨리는 마음도 있었을 듯. 어찌 되었든 발표를 (생각보다) 잘 마쳤고, 고민 끝에 새로운 프로젝트로 옮기게 되었다. 나는 항상 내가 꼭 필요한 곳에서 일하고 싶었다. 프로젝트를 옮긴 것도 그 때문이었다.

​6월엔 자전거와 시원한 집, 일로 가득 채우며 바쁘게 보냈다. 새로 옮긴 팀에서 그동안 도전해보고 싶었던 일들을 몇 가지 시도하면서 일하는 즐거움을 느꼈고, 자전거를 정말 많이(..) 타면서 튼튼해지는 걸 실시간으로 느꼈다. 친구네 횡성 집에도 다녀왔고, 성공적인 비건 위크도 했구. 사무실에 새 친구 호냥이(한사토이 아기호랑이 인형)도 모셔왔다네.

​7월은 시작부터 좋지 않았다. 회사에서 있었던 고민을 머릿속에 안고 자전거 퇴근을 하다가 언덕에서 넘어졌다. 다행히도 골절은 아니었지만 타박이 심해서 한쪽 다리가 거의 좀비 수준이었다. 바닥에 발을 디디는 것도 아파서 어딜 잘 돌아다니질 못했고, 자전거는 당연히 못 탔다. 조금 나아지면 타려고 했더니 바로 끝나지 않는 장마가 시작되었다. 안희정, 손정우, 박원순으로 이어지는 지옥의 한 주도 있었다. 여기저기서 받는 스트레스를 해소해야 하는데, 자전거를 못 타니 몸속에 스트레스가 점점 쌓여갔다. 그래서 스위치와 모동숲을 샀다. 위안이 되는 건 그것뿐이었다.

​8월에는 도무지 솔직해질 수 없는 일들만 일어났다. 여전히 솔직하게 무언갈 털어놓는 일이 어렵고, 왜 이렇게 밖에 못하는 걸까 스스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리저리 갈대처럼 흔들리기만 하는 나 자신이 싫어서 변화의 기회를 여럿 만들었다. 브런치에 글을 발행해봤다. (노션으로 업무일지를 씁니다.) 디렉토리 매거진에서 월말정산을 주제로 인터뷰를 했다.(Read between the numbers)

9월이 시작되는 지금, 내가 해온 노력과 주변에서 주었던 기회가 점점 괴리감을 증폭 시키고 있단 생각을 했다. 우울해하는 나에게, 한 친구는 다들 두 가지 모습 정도는 가지고 있는 건 아니냐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아 나는 그러기 싫었나 봐 싶었다. 솔직하지 못하지만 솔직해지고 싶었달까. 내가 원하는 나의 바운더리 안에서만이라도 솔직해지고 싶었다. 지금은 이도 저도 아닌 것 같다. 그냥 그런 척하는 사람이 되어버린 것 같았고. 내가 가장 경계하는 모습이 되어버린 것만 같다.

​인생이 쓰레기장으로 향하는 고속 열차를 탄 것 같다고 했더니, 또 다른 친구는 쓰레기장은 고속 열차로 빨리 통과해버리고 사과가 열리는 과수원으로 달려가라고 말했다. 맞네. 나는 사과인데, 사과가 잘 열리는 과수원이 내 종착역인데. 잊고 있었다. 이렇게 된 이상, 4월의 내가 했던 말을 다시 보면서 열심히 다시 과수원으로 달려보는 수밖에 없지. 거창한 계획을 세우거나 드라마틱한 변화를 꿈꾸는 게 아니라, 그저 원래 내가 갖고 있던 것을 소중히 돌아보며 가꾸는 것, 과일을 키우는 마음처럼. 그런 마음이 지금 나에게 필요할 때가 아닐까. 분명 나아질 것, 내 안에는 힘이 있으니까.

행복한 순간마다 언젠가 다가올 불행에 불안했다. 항상 온전히 행복한 적이 없었고 매 순간 조금은 슬펐다. 여전히 가끔 슬프지만 결코 불행하지 않다. 현재의 행복에 실체 없는 불안을 섞지 않는다. 이건 나에게 절대 불행한 일이 생기지 않을 거란 기대가 아니라, 불행을 행복으로 다시 바꿀 힘이 있다는 것이다. - 2020.0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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